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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7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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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SALON

오늘 나의 하루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존재한다면... 플래툰

영화 ‘플래툰’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어지러운 세상이다. 세계의 정세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 모씨가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수많은 언론들이 북한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이를 보도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중인 국가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난 2월 21일,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지금까지의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 대선 유세에서 한국과의 무역협정으로 일자리 10만개를 뺏겼다고 얘기한 바 있다. 외교통상부는 미국의 무역 압박에 대한 만약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렸다. 42개국이 11개 종목에 참가해 7일간의 열띤 경쟁을 벌였다.

 총알이 난무한 전쟁이건, 무역 전쟁이건, 혹은 스포츠 전쟁이건 모든 게 국가와 국가, 또는 이념과 이념 사이의 경쟁이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린 이념 싸움이든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든 순수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선의의 경쟁이든 간에 서로 간의 힘겨루기는 변함이 없다. 경쟁에서 시작된 조그만 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쟁이라는 의미로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해 이제 한번쯤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는지 물음표를 던져 본다.
필자는 지난 해 연수 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발견한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는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전쟁의 의미,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그 의미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미국 워싱턴 소재

 오늘 이렇게 장문의 무거운 글로 서두를 연 것은 오래되고 케케묵은 영화 한 편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혼란스러운 현재의 세계정세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기에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영화 ‘플래툰’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플래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1987년 개봉한 영화 ‘플래툰’은 올리버 스톤이 메가폰을 잡고 우리에게 익숙한 톰 베린저, 윌렘 대포, 찰리 쉰 등이 출연해 실감나는 연기력을 펼쳤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젊은 병사 크리스 테일러(찰리 쉰 분)가 고향의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본인이 겪은 베트남에서의 일상을 내레이션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타의 전쟁 영화들은 그 동안 전쟁의 참혹상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반인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전쟁의 현실감과 아픔을 스크린과 음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데 주력했다. 1962년 발표된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의 경우 런던의 연합군 최고 사령부가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는 장면을 현실감 높은 화면으로 구성했는데 그 엄청난 수작의 영화도 전쟁의 스케일을 표현하는데 집중했을 뿐 관객들로 하여금 군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전쟁의 참혹상을 개인의 마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변한 대표적 작품은 많은 이들이 한번쯤 접해본 1998년 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똑같이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영화 자체의 재미보다,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뛰어드는 불가피한 현실과 그로 인한 병사 개개인들의 감정 변화를 리얼하게 묘사해주고 있다.

영화 ‘플래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그렇다면 전쟁영화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플래툰’은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영화는 매일 같이 베트콩과 싸우는 전쟁의 일상을 그려내면서도 전투의 스케일과 전쟁의 명분을 뒤로 한 채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 속에 빠져 있는 군인들 간의 내적 갈등에 주목한다.
총알이 난무한 전쟁터에서 현실주의적인 성향을 펼치는 반즈 중사(톰 베린저 분)와 인도주의적인 성향을 펼치는 일라이어스 중사(윌렘 대포 분) 사이의 내적 갈등이 바로 그 것이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그리고 적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어쩌면 자비와 평화는 뒷전이고 적을 하나라도 더 섬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모습과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죄 없는 사람들을 구별해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다.

 영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느 날 수색작전을 펼치다 적의 부비트랩에 아군이 전사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 화가 극에 달한 대원들은 곧 근처의 마을로 쳐들어가 촌장을 붙잡고 심문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반즈 중사는 촌장의 아내를 사살하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반즈 중사와 일라이어스 중사 간의 대립은 절정을 치닫는데, 결국 대원들 사이에서도 편이 갈리면서 어느 순간부터 전쟁은 베트콩과의 싸움이 아닌 아군과 아군 간의 싸움으로 바뀌어 간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내적 충돌에 주목하면서도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편이 갈라지는 대원들의 대화와 행동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영화 ‘플래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러한 긴장 상태는 다음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받는 사이, 아무도 몰래 반즈가 일라이어스를 죽이게 되면서 최고조로 치닫게 된다. 이를 눈치 챈 크리스는 반즈에게 반격할 기회를 엿보다, 캄보디아 국경 지대에서 적의 공격에 부상을 당해 혼자 남겨진 반즈를 발견하고는 그를 죽이게 되면서 그 막을 내린다. 전투에서 2번째 부상을 당한 크리스는 전투 규정상 본부로 후송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크리스가 귀환 헬기에서 흘리는 눈물과 내레이션은 전쟁의 의미를 가장 현실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숙제를 안겨 준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우린 적이 아닌 우리 자신과 싸웠어요. 적은 우리 안에 있었죠. 난 이제 여기를 떠나겠지만 이 기억은 평생 저와 함께할 거에요. 일라이어스는 반즈와 싸우며 제 영혼을 사로잡겠죠. 가끔은 제가 그 둘을 아버지로 두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같아요. 어찌됐건 살아남은 자들은 이 전쟁을 되새겨보고 거기서 배운 교훈을 전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떠한 명분이 있더라도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설사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 할지라도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과 유가족들은 물론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은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감독 올리버 스톤은 전쟁의 결말은 결국 모두가 패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비단 총알이 난무한 전쟁터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경쟁에 기반을 둔 전쟁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크리스가 마지막에 남긴 살아남은 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여운이 그래서 깊다.

- 대외협력사업화실 M군 -

영화 ‘플래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