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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9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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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두뇌와 몸이 반응하고 있다면... 더 보이

영화 ‘더 보이’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수필을 좋아해 적당한 수필집을 찾다가 우연히 방송인으로 유명한 영화평론가 A의 글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 대한 시각과 지식이 궁금해 굳이 그의 영화비평을 찾아봐야만 했다. 단편적인 느낌을 얘기하자면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는 건지, 아니면 영화를 볼 필요 없이 내 글을 읽고 간접적으로 만족하라는 건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은 전자의 느낌이 강해야 한다고 본다.
 필자 또한 영화를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영화를 추천하고 싶었고 그 이유를 늘어놓고자 글을 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신작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놓치고 흘러 보낸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 가능한 신작이 아닌 조금은 유행이 지난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했다. 어차피 신작 영화들은 방송과 광고를 통해 꾸준히 홍보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비평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너무나 어려운 내용과 난해한 용어를 내포한 경우가 많다. 독자들에게 영화를 쉽게 소개하면서 독자들 스스로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게 이 글의 목적인데 어쩌면 필자도 나만의 용어로 어려운 내용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라는 게 그런 거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 의해 만들어진 지극히 주관적인 콘텐츠니까, 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객의 시선은 다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건 영화에 대한 이해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영화는 결코 어렵지 않다.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영화를 쉽게 얘기했으면 한다. 그게 단순한 영화이든, 복잡한 영화이든 간에 말이다.

영화 ‘더 보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여전히 서두가 길었다. 조금은 재미없지만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난해한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만 주야장천(晝夜長川) 파고 있는 윌리엄 브렌트 벨 감독의 ‘더 보이(2016)’를 얘기하고자 한다.
2016년 국내 개봉한 영화 ‘더 보이’는 포스터에서부터 관객들을 압도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쳐다보고 있는 인형의 눈동자, 영화 ‘사탄의 인형(1988)’의 처키만큼은 아닐지라도 영화 속 브람스 또한 그에 못지않은 포스를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겉으로 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를 들여다보면 직접적으로 공포를 유발시키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는데 무섭게 만드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관객들은 어떤 곳에 포인트를 잡고 영화를 관람해야 할까.

 주인공 그레타(로렌 코핸 분)는 다소 폭력적인 남자친구를 피해 외딴 마을의 저택에 살고 있는 어느 노부부(짐 노튼 분, 다이애나 하드캐슬 분)의 유모로 채용된다. 하지만 노부부가 소개한 아들 브람스는 사람이 아닌 소년 형상을 한 인형이었다. 노부부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 그레타는 그에 비해 노부부가 인형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하자 점차 혼란에 빠진다. 심지어 노부부는 인형 브람스를 대하는 10가지 규칙을 알려주며 이를 꼭 지켜주길 당부하고 어느 날 여행을 떠나버린다. 저택에 인형 브람스와 단 둘이 남게 된 그레타는 처음에는 규칙을 무시하며 편하게 생활하지만 점점 이상한 일들을 계속 겪게 되면서 인형 브람스가 살아있다고 믿게 된다.

영화 ‘더 보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여기서 관람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레타가 겪게 되는 “이상한” 일들이 어떤 것인가이다.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이라면 유추는 너무나 쉽다. 인형과 단 둘이라는 말은 사실 그레타 혼자 저택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그 후 그레타가 겪게 되는 이상한 일들이라는 건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겪을 수 없는 일들이라는 거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관객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이는 앞서 얘기했던 무서울 게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둘째는, 이상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이다. 정말 인형 브람스가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인형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건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유추해야 한다. 인형 브람스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건 결국 이 영화가 폴더가이스트(poltergeist)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얘기이고, 누군가 인형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면 이 영화는 스릴러(thriller)의 방향으로 간다는 거다.

 자, 관객들로 하여금 너무나 쉽게 또는 평이하게 영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공포영화로서의 이 영화는 실패이다. 하지만 영화 ‘더 보이’는 해외에서 먼저 개봉해 압도적인 호평을 받으며 제작비 1천만 달러의 6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영화를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영화 ‘더 보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 ‘더 보이’는 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반전 영화를 지향하는 듯 하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센스(1999)’,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아더스(2001)’ 등에서부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반전 영화의 매력은 관객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다는 거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앞에서 언급한 여러 방향으로 다양한 유추를 하겠지만 결말은 결코 쉽게 떠올리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무수히 많은 반전 영화 속에서 이 영화 또한 어쩌면 피해를 본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화 ‘더 보이’의 매력은 공포도 반전도 아닌 ‘긴장감’이다.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구성하는 피, 소리 등의 전형적인 기교가 사라지는 건 최근의 추세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각각의 상황이 알맞게 맞아 들어가는 철저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 그레타로 하여금 인형 브람스가 점점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은 긴장감의 절정을 보여준다.
 앞에서 얘기한 2가지의 관람 포인트는 자칫 그 시간을 재미없게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건 감독의 연출 기교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과연 정체가 유령인건지 아니면 누군가 장난치는 이가 있는 건지, 도대체 왜 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추측해야 하는 재미가 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은 결코 가볍게 떠올리기 쉽지 않은 방향이다.

영화 ‘더 보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 ‘더 보이’는 긴장감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분명 뛰어난 영화이다. 하지만 반전을 가져온 결말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유추한 사지선다형의 보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좀 더 신선한 방향으로 결말을 만들어줬더라면 감독의 연출이 보다 주목받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금은 재미없지만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난해한 영화 ‘더 보이’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추천하는 영화이다. 재미가 조금 없어도 공포가 조금 덜해도 그리 복잡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시간 동안 당신의 두뇌와 몸이 반응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