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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0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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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지에서 잠시 길을 잃어버리다... 클로버필드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사람들은 영화를 왜 보는 걸까.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 그렇다면 재미를 추구해야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걸까. 재미가 없다면 왜 관람료를 지불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걸까. 재미는 코미디 장르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스릴러 장르는, 호러 장르는, 혹은 멜로물은 재미가 없는 걸까. 꼭 웃음을 선사해야만 재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사람들은 왜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영화를 보는 걸까.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이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은 재미와 신기함, 호기심 등으로 시작했지만, 현대 영화는 메시지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부여’ 말이다. 영화 속 미장센(mise en scene)은 연출자인 감독의 의도를 상당 부분 내포한다. 아무 이유 없이 연출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혹은 보고난 후 갖가지 유추를 통해 감독의 연출 의도, 장면 하나하나의 구성을 해석하곤 하기도 한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을 다시 가져와 보자.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극장을 찾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감독의 연출 의도를 해석하는데 머리를 써야 하다니 이런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이런 과정 또한 포함한다면 할 말이 없다. 눈물 펑펑 흘리게 만드는 신파극이라거나 나름의 생각과 교훈을 갖게 만드는 역사물 등의 장르라면 또 다른 얘기가 될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번 영화를 얘기했으면 좋겠다. 감독은 무언가 많은 걸 얘기하고 싶어 하는데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리송해하는 그런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렛미인(2010),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 등 적어도 말랑말랑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아 보이는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2008)’를 얘기해보자.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우선, 이 영화가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E.H.H(Extreme Hand Held)라고 불리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은 쉽게 말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는 방식을 말한다. 주인공과 동일한 시점에서 화면을 바라보기 때문에 관객들이 현장의 박진감과 긴장감 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뭐 최근 들어 3D, 4D영화까지 나오면서 그 감동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대표적인 핸드헬드 영화로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를 떠올리겠지만 필자는 그 보다 훨씬 전 핸드헬드 영화의 본격적인 시대를 개척했다고 생각하는 ‘블레어위치(1999)’를 얘기하고 싶다. 영화 ‘블레어위치’는 영화 속 인물이나 단체, 혹은 가상의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을 사용했다. 정성스레 꾸민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관객들에게 보다 신뢰감 있게 전달하고자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선택한 것이다. 관객들은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전달받는 가상의 현실 상황을 핸드헬드 시점으로 바라보면서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영화 ‘클로버필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택했다. 영화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발견된 한 캠코더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겠지만 앞서 언급한 ‘블레어위치’에 비해 조금은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어위치’가 ‘혹시’라는 의심이 가능케 하는 초자연적 유령에 대한 전설을 기반으로 하는데 비해, ‘클로버필드’는 맨해튼 한 복판에 정체불명의 거대괴물이 나타났다는 설정으로 좀 더 비현실적인 줄거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대괴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카메라를 직접 손에 들고 현장 곳곳을 촬영하는 주인공 플랫(T.J.밀러 분)의 연기는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바로 정체불명의 괴물이다. 괴수 또는 괴물, 귀신, 혹은 외계인 등을 다루는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그 직접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주인공에게 어떤 공포를 가져다주는지 등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영화 ‘클로버필드’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선택하면서 이 영화를 고질라(2014)와 같은 괴수영화가 아닌 ‘재난영화’의 한 종류로 만들어버렸다. 정체불명의 거대 괴물을 마주한 맨해튼은 도망가기 바쁜 사람들로 아우성을 이룬다. 재난영화는 주로 재난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행동 묘사,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랑과 배신 혹은 가족애 등을 표현하는데 주력하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러한 내용에 포인트를 맞춘다. 거대괴물의 모습보다는 주인공 롭(마이클 스탈 데이빗 분)이 사고로 형(마이크 보겔 분)을 잃거나 여자친구인 베스(오데트 애나벨 분)를 구하러 가는 급박한 상황 등에 좀 더 치중하면서 주인공들에게 닥친 재난상황의 현실감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제작진은 이러한 상황만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게 보다 재미를 더해준다고 판단한 걸까. 아쉽지만 적어도 사실적인 표현만큼은 앞서의 ‘블레어위치’에 비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바로 괴수영화가 아닌 재난영화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쁜 상황에서 손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니, 퓰리처상을 노리는 종군기자도 아니고 말이다.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또 다른 얘기를 해보자. 초반에 거대괴물의 난동으로 인해 주인공들의 곁에 특별한 위험상황이 하나 펼쳐진다. 바로 자유의 여신상의 목이 날아오는 장면이다. 하고많은 물건 중에 하필이면 자유의 여신상일까. 이는 미국의 상징, 뉴욕의 상징, 바로 미국인들의 ‘자유’가 무너졌다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앞에서 언급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영화 혹성탈출(1968)의 마지막 장면을 본 관객이라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이는 최근 혹성탈출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이는 맷 리브스 감독의 서비스라고 해도 좋겠다.

 이 외에도 살펴봐야 할 거리를 찾아보자. 일단 이 영화는 괴수영화를 재난영화로 만들어 버리면서 ‘이유’가 사라졌다. 괴물이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이유,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 이유 등 영화를 끌고 가기 위한 서사구조 말이다. 영화를 2시간 동안 이끌기 위해 육하원칙을 서사적으로 늘어놓는 영화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영화 ‘클로버필드’는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재난영화 그 자체의 설정만으로 스토리를 국한시켰기 때문에 상황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잃어버린 형제, 헤어진 연인의 재회 등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코드를 밟아나가면서 거대괴물의 등장은 그냥 자연적인 재난일 뿐이다.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여기까지였다면 재미는 덜할지라도 아마 깔끔한 마무리가 됐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영화 ‘클로버필드’에 대한 이야기를 2017년 이 시점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끄집어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혹자는 후속작이라고도 얘기하는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2016)’이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잠시 길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한 스포일러는 인터넷에 얼마든지 있으니 이를 잠깐 얘기하자면, 이 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클로버필드’가 사건 발생 당일로 마무리 되지 않고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시발점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얘기할 수 있겠다. 그것도 뉴욕 맨해튼 한 복판이라는 커다란 공간에서부터 알 수 없는 지역의 제한된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말이다. 이번에는 재난이 아니라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누군가 나를 가뒀는데 그게 살려주는 거란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갇혀진 이의 입장에서는 과연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건지 궁금할 뿐이다. 밀실공포는 아닐지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심리공포를 던져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10번지에서 길을 잃었다고 표현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잠시’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감독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서사를 연재 형식으로 늘어놓는 스타워즈나 에이리언 시리즈와는 표현 방법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재난 상황을 모큐멘터리 방식으로 보여주는 1편과 밀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 심리를 표현하는 2편의 판이하게 구분되는 연출 형식이라니.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경우, 1, 2편의 흥행을 등에 업고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을 연속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한 마디로 평단과 관객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개인적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했다). 영화 ‘클로버필드’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통해 터미네이터 시리즈 못지않게 방향을 잡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사 파라마운트는 올해 말 ‘갓 파티클(God Particle, 2017)’이라는 새로운 클로버필드 시리즈를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구가 갑자기 사라지고 살아남은 우주비행사들이 새로운 외계 우주선을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앞에서 ‘잠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클로버필드 시리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이 영화가 나온 후 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적어도 앞에서 얘기한 스타워즈나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시리즈와는 좀 더 차원이 다른 색다른 유형의 시리즈물로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클로드필드’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의 연출의도 해석은 참 어렵다. 그것도 장면 하나하나마다 복잡한 미장센이 놓여있다면 그 점은 더 할 것이다. 관객들이 그냥 영상을 편히 즐기며 봤으면 하는 건 너무 단편적이고 커다란 바람일까. 3번째 시리즈 ‘갓 파티클’ 개봉 예정 소식에, 지구가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건지, 괴물영화인데 왜 외계인이랑 붙는 건지, 스토리 구조상 시리즈를 1, 2, 3편으로 왜 나눴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네티즌들의 수많은 댓글들을 보며 이에 대한 생각이 더해간다.

 허나, 꽁꽁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찾아보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 과정 또한 스트레스가 아닌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뛰어난 연출가이자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제작자인 J.J.에이브람스의 세 번째 메시지는 10번지에 이르러 잠시 길을 잃고 흐릿해진 관객들의 시야를 분명 선명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