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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1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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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근원을 찾아서... 에이리언 : 커버넌트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영화를 보는 2가지 유형이 있다. 한번 본 영화는 다시는 안보는 이와 한번 봤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이. 필자는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 D대 연극영화학과 Y교수는 적어도 한 영화를 10번 정도 봐야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이 보는 외국 영화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자막을 읽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현지인도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마다의 내용과 구성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영어를 잘 모르는 평범한 이들은 더하지 않을까, 물론 필자도 그렇다.

 영화를 한번만 보면 줄거리를 쫓는데 급급할 뿐 기억 속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 미처 못보고 지나쳐버린 장면이라든가 화면의 구성, 그리고 어쩌면 배우들의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하나까지 발견하고 느끼며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여러 번 곱씹어 봐야 이해하기 쉬운 비교적 최신 영화 한 편을 얘기했으면 한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오랜 만에 다시 꺼내든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다.

영화 ‘스타워즈4(1977)’ ‘스타트랙(1979)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에이리언(1979)’이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공포에 열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4 : 새로운 희망(1977)’을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환상을 선사한 뒤였다. 뿐만 아니라, 1979년은 1966년 이후 NBC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스타트랙’ 시리즈가 로버트 와이즈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해이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제대로 편승했다. 그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영화를 기획하던 중,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R.기거의 화보집 ‘네크로노미콘’을 보게 됐고 이를 통해 그에게 새로운 크리쳐의 디자인을 맡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이리언은 그렇게 탄생했다.

 여기서 잠시 ‘네크로노미콘’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네크로노미콘’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이다. 이 가상의 책은 신화 내에서 오래된 역사를 소환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사실 ‘네크로노미콘’이 아니라 이 책을 가지고 얘기를 풀어나가는 ‘크툴루 신화’이다. 크툴루 신화는 지구 역사를 되돌아 봤을 때 인류보다 훨씬 강력하고 고도의 문명을 가진 존재가 다른 별들로부터 지구로 날아와 이 세상을 지배했었다는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더군다나 이 종족은 하나가 아니며 수많은 여러 종족들이 지구를 번갈아 지배하며 흥망을 되풀이 했다. 지구에는 이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이들은 현재 잠시 동안 지구를 떠나 있을 뿐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만화 ‘강식장갑 가이버’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 ‘에이리언(1979)’은 H.R.기거의 ‘네크로노미콘’ 화보집에서 시작하면서부터 일찌감치 이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얼핏 보면 그럴 듯 해 보이는 크툴루 신화의 배경은 타카야 요시키의 만화 ‘강식장갑 가이버(1985~현재)’에도 영향을 미쳤다. 외계로부터 온 강림자들이 전투에 가장 적합한 생물을 개발하기 위해 지구로 와 여러 생체실험을 거듭했고 미생물에서부터 공룡 등을 거쳐 마지막에 인류를 만들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만화는 강림자의 존재를 알아 챈 국제조직이 그들이 남긴 강식장갑과 함께 그들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로 1985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2017년 현재까지 계속해서 연재되고 있는 아주 대단한(?) 만화가 아닐 수 없다.

 다시 이야기를 본래의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로 돌려 보자. 영화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적합한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난 ‘커버넌트 호’가 우연히 목적지와 다른 어느 행성으로부터 갑작스런 신호를 받아 항로를 변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줄거리 소개는 이걸로 충분할 듯하다. 우리는 이미 30년 넘게 이 영화를 보며 ‘에이리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난 2012년 프리퀄(prequel)인 ‘프로메테우스(2012)’도 이미 접했다. 또한 이 영화는 친절하게도 제목에 ‘에이리언’이라고 적어 놨다. 그러니 갑작스런 신호를 받아 항로를 변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당연히 에이리언을 만나 벌어지는 내용이라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에이리언을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저 상상에 맡기겠다.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 영화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노력의 산물이지만, 개인적인 평가는 전 작품인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1979)’을 이어보려고 하는 노력 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조금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서 기대치를 맞추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에이리언’ 시리즈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연결된 줄거리를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야구로 치자면 4회와 6회, 7회, 8회를 먼저 보여주고 1회와 2회를 뒤늦게 제시하는 형식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경우, 에피소드 4편(1977), 5편(1980), 6편(1983)을 먼저 공개하고 1편(1999), 2편(2002), 3편(2005)을 뒤늦게 만들었다. 그리고 7편(2015) 개봉 후 올해 8편(2017)이 곧 공개될 예정이다. 에이리언 시리즈 또한 처음에는 1편(1979), 2편(1986), 3편(1992), 4편(1997)의 순서대로 개봉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가 공개되면서 관객들의 머릿속 시리즈의 순서가 엉켜버렸다.

 이런 영화들의 특징은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환경의 특성 상 부득이 순서를 뒤바꾸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건 결론은 왜 그랬을까에 대한 궁금증 유발이다. 뜬금없지만 이번에는 축구로 비유해보자. 전반전은 1:0으로 마쳤는데 후반전을 놓친 사이, 경기는 연장전까지 가서 1:1로 마감됐다고 한다. 이 경우 사람들이 과연 후반전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 할까? 축구를 좋아하는 팬덤(fandom)인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쉽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경기의 결과가 중요한 스포츠 경기에 있어 결론이 1:1임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1:1 동점이 됐는지 다시 찾아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자,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는 후반전 같은 영화이다. 패색이 짙던 전반전 경기가 후반전에서 어떻게 1:1이 되어 연장전까지 가게 됐는지 그게 궁금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후반전을 궁금해 하는 관객을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기에 나름 짜임새 있게 시리즈 속 제 역할을 하고자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영화는 한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이야기의 연계성에 치중한 나머지 독립된 영화 자체로서 갖춰야 할 부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다시 말 해 앞과 뒤의 연결고리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이 그 유명한 에이리언 영화라는 사실을 잊었다는 얘기이다. 그것도 프로메테우스(2012)와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말이다(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메테우스(2012)는 에이리언(1979)의 프리퀄임을 스스로 낮추려 애썼지만, 이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는 에이리언 영화임을 제목에 빤히 나타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진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인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분)과 커버넌트 호 승무원들과의 사투를 그려내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은 에이리언과 승무원들 간의 사투를 그리는데, 인간이 만들어 낸 데이빗과 사투를 벌인다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에이리언은 철저하게 조연이다. 물론 승무원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건 에이리언이지만 영화의 갈등 요소는 모두 데이빗으로부터 시작된다. 데이빗과 웨이랜드(가이 피어스 분), 데이빗과 대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 분), 데이빗과 월터(마이클 패스벤더 분). 심지어 데이빗과 에이리언까지. 카메라의 시선이 면대면(face to face)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화면은 데이빗과 각 등장인물 간의 갈등 구조를 최고조로 몰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얘기한 독립된 영화로서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가 모두 에이리언과 승무원들 간의 대결에 치중한 모습을 보인 건 분명하다. 특별한 내용과 주제를 드러내기 보다는 에이리언의 기괴한 모습에 관객들이 놀라거나 그저 외계생물과 싸우고 대결하는 스토리가 전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에이리언과 등장인물 사이의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인이 각각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영화 에이리언(1979)의 경우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가 여전사로 변모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며 AI 애쉬(이안 홈 분)와의 갈등 구조 또한 영화 속에서 상당한 무게감을 보여준다. 에이리언은 그 모습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지능이 높은 외계 존재로써 인간과 고도의 두뇌 대결을 벌이는 재미를 보여줬다.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반면, 이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는 그런 게 부족하다. 등장인물 간의 스토리 라인도 약할 뿐 아니라 AI 월터와 데이빗 사이의 갈등 구조는 기대에 못 미친다. 필자는 영화를 보며 제작진이 오히려 이 두 AI 사이의 갈등 구조를 재미나게 엮기를 바랐지만 결국 영화의 마무리는 두 AI를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2(1991)의 T-101(아놀드 슈왈제네거 분)과 T-1000(로버트 패트릭 분)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그나마 재미는 그보다 더 없다. 덕분에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2016)’에서 오러로 큰 역할을 맡았던 캐서린 워터스턴은 이 영화에서 시고니 위버를 뛰어넘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소수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희생양에 불과했고 우리에게 친숙한 에이리언은 화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에이리언 : 커버넌트(2017)’는 그 존재만으로도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1979)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캐서린 워터스턴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연기 변신을 시도하며 엉킨 시퀀스를 해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영화 속 각각의 장면들은 결국 에이리언(1979)으로 이어지기 위한 아이템들을 여럿 포함한다. 다시 말해 줄거리를 늘어놓고 앞과 뒤를 강제로 갖다 붙이는 전개방식이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에 아이템을 자연스레 배치해 둠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아, 저거 그때 봤던 그건데 하며 부드럽게 뒷 스토리와 연결되게끔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AI 월터와 데이빗으로 분한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 또한 소름 끼칠 정도로 객관적이다(여기서의 표현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가끔은 창조를 하려면 파괴를 해야 한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AI 데이빗의 표정과 대사는 앞에서 얘기한 ‘크툴루 신화’ 속 ‘네크로노미콘’과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대변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영화의 시초인 ‘프로메테우스(2012)’를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엔딩 크레딧을 꼽았었다. 엔딩 크레딧 라인에서 귓가에 흐른 쇼팽의 프렐류드 Op.28. 15번 ‘빗방울 전주곡’ 멜로디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엉켜있던 필자의 머릿속을 한꺼번에 해소시켜 주었다.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의 프렐류드 중 꽤 길면서 잔잔함을 선사해주는 곡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잔잔함 속에 강렬한 울림이 있는 곡이기도 하다. 다만 감독은 왜 엔딩 크레딧에서(정확히 말하자면 “엔딩 크레딧에서도”라고 얘기해야 하지만) 굳이 이 음악을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그것도 에이리언의 탄생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 이후에 말이다. 이 음악이 과연 폭풍후가 몰아친 후를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폭풍후가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함을 암시하고자 한 건지 필자는 아직도 궁금하다. 굳이 선택하자면 후자의 경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인류의 근원에서부터 시작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여정이 계속해서 순탄하게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