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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2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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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로건

영화 ‘로건(2017)’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히어로 영화가 성행하고 있다. 미국의 양대 코믹스 중 하나인 마블(Marvel)이 그 주역이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토르, 헐크를 비롯해 히어로들의 집합체인 어벤져스까지. 경쟁자인 DC의 마음이 조급한 건 당연하다. 그래서 오래된 슈퍼맨과 배트맨을 급히 소환하고 어설프게 그린랜턴에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꺼냈다가 평가와 흥행에서 낭패를 봤다(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은 예외로 하자). 최근 패티 젠킨스 감독의 영화 원더우먼(2017)이 가져온 흥행 결과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그 때문이다.

 어쨌건 필자는 잘 나가는 마블보다 DC의 오랜 팬이었다. 댄 리바(Dan Riba)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 2001)와 언리미티드(Justice League Unlimited, 2004)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아마 필자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 충성스런 DC의 팬이 본의 아니게 마블의 한 영웅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건 팬이고 아니고를 떠나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기존의 마블 영화와는 다른 스타일의 내용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7년 간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던 바로 그 영웅, 영화 “로건(2017)”이다.

애니메이션 ‘저스티스리그 언리미티드’의 DVD 타이틀 – 네이버 출처

 지난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 엑스맨(2000)이 개봉한 이후 지난 해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까지 총 8편의 엑스맨 영화가 관객들을 찾았다. 무려 16년이다. 그리고 햇수로 17년이 되는 올해에 9번째 영화, “로건(2017)”이 개봉됐다.

 울버린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로건은 돌연변이 군단 엑스맨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코믹스에서 ‘인크레더블 헐크’에 처음 등장하게 된 그는 원래 헐크를 상대하기 위해 파견된 캐나다의 요원이었다. 손등에서 날카로운 뼈(?)가 튀어나와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후 군대에 입대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CIA요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웨폰X라는 기관에 납치되어 모든 골격에 아다만티움이라는 금속이 주입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잠시 엑스맨을 다룬 영화들과 마블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마블코믹스는 지난 90년대 회사의 경제적 사정이 크게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몇몇 캐릭터의 영화 판권을 팔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 스파이더맨과 관련 캐릭터들은 영화사 소니(Sony Pictures)에게, 엑스맨과 판타스틱4 등은 영화사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에게 넘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후 마블은 2008년 자신들만의 영화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고 첫 영화인 아이언맨(2008)을 시작으로 현재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를 구성하게 된다. 어쨌든 이러한 연유로 오늘 이야기하는 영화 ‘로건(2017)’의 제작사는 마블 스튜디오가 아닌 20세기폭스가 되겠다.

영화 ‘로건(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에 딱히 새로운 걸 기대하지 않았다. 그건 지난 17년간 보여준 8개의 작품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영화를 보며 조금씩 바뀌어갔다. 뭔가 새로운 게 있었냐고? 물론이다. 코믹스 원작인 그래픽 노블에 바탕을 둔 줄거리 나열과 특수효과 보여주기에 급급하던 지난 여덟 편의 영화들과는 달리 히어로의 고뇌와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점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가장 크게 다가온 건 “대사”가 던지는 임팩트였다.
로라(다프네 킨 분)가 로건(휴 잭맨 분)에게 매일 악몽을 꾼다고 나직이 얘기하는 장면은 두 뮤턴트(돌연변이) 사이의 감정이 열리는 순간이다. 꿈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친다는 로라의 말에 로건은 “내 꿈은 달라, 내가 사람들을 해쳐.”라고 답한다. 엑스맨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그가 겪어온 모든 상황들과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그의 정신과 마음을 압박하고 있었는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간결한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대사를 보자. 로건과 로라 둘 만이 남아 있던 때에 로건은 로라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항상 험한 꼴을 당해.” 히어로의 숙명이 아닐 수 없겠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분명 히어로도 사람이라는 점이다.

영화 ‘로건(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 영화를 끄집어내기 위해 앞에서 잠시 DC를 언급했었다. 사실 함께 얘기하고 싶은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배트맨 비긴즈, 2005/다크 나이트, 2008/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와 매우 닮아 있다. 단지 주인공의 짐과 고뇌를 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와 연출 방식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두 영화는 필자가 좋아하는 면대 면(Face to Face) 방식의 화면이 많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는 화자간의 면대 면 구성은 얼핏 보면 단순한 방식으로 보일지 몰라도,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양자의 감정 흐름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다. 영화 로건(2017)에서는 로건과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 분) 사이에서,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과 조커(故 히스 레저 분)? 아니다, 배트맨과 함께 감정을 이끌어 가는 이는 제임스 고든(게리 올드만 분) 국장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는 2번째 작품 다크 나이트(2008)에서 故 히스 레저가 명연기를 펼치며 조커의 캐릭터를 새롭게 부각시켰지만, 사실 그건 배우의 연기력과 캐릭터의 인기에 국한될 뿐 영화의 갈등 구조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두 사람은 배트맨과 고든 국장이다. 히어로 영화의 특징이 선(善)과 악(惡)의 대결을 바탕으로 하기에 각기 선(善)을 대표하는 배트맨과 고든 국장이 스토리 리더라는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잘 살펴보면 조커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뿐,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의견과 방법을 제시하는 쪽은 배트맨과 고든 국장이다. 다시 말해 선(善)과 악(惡)의 단순 구도에서 양쪽의 갈등 상황이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기보다는, 여러 배우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부여해 선(善)과 선(善)의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스토리 리더의 역할을 폭넓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빌런(Villain, 악당)으로 조커 외에 하비 덴트/투 페이스(아론 에크하트 분)를 투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시 영화 로건(2017)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 또한 로건과 자비에 교수가 그런 역할을 한다. 상황은 언제나 악당이 만들어낸다. 다만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이 대립하고 또 행동을 취하는 건 로건과 자비에 교수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의 의견이 오가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갈등과 감정 전달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영화는 2시간을 쉬지 않고 두 배우 간의 갈등 요소를 감정으로 대변하며 영화를 만들어간다. 대화 장면에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2008)’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두 번째로 두 영화의 O.S.T는 서로 확연히 다른 음악적 선율을 선보이지만 그 속에 깔려 있는 분위기는 다소 비슷한 기운을 내포한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는 한스 짐머(Hans Zimmer)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James Newton Howard)가 참여한 O.S.T를 선보인다.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가장 무게감을 주는 곡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배트맨이 누명을 쓴 채로 도망치고 고든 국장과 그의 아들이 배트맨은 잘못한 게 없지 않느냐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선보인다. ‘A Dark Knight’라는 제목의 이 곡은 약 10여 분간 저음에서 고음까지 아주 천천히 오르내리며 영화의 여운을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선사하는데, 한편으로 화려함이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명을 덮어쓰고 도망자가 된 히어로의 쓸쓸한 뒷모습에 보내는 마치 장송곡의 기운마저 살펴볼 수 있다.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94TAFSMdkvk)

 영화 ‘로건(2017)’의 음악은 이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다. 주유소 편의점 장면에서 사용된 짐 크로스(Jim Cross)의 ‘I got a name’은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2012)’에도 사용됐던 곡이다. 짐 크로스는 1973년 루이지애나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른 후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 중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로건(2017)’에 어울리는 곡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곡은 역시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곡이었다. 쟈니 캐쉬(Johnny Cash)의 ‘The Man Comes Around’라는 곡인데 요한계시록의 인용구를 옮겨 적었다는 가사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사와 달리 흥에 겨운 기타 연주가 로건의 마지막을 오묘한 느낌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었다. 영화 곳곳에 흐르는 수많은 O.S.T 중 굳이 이 곡을 언급한 이유는 미국의 산간과 초원 지대를 배경으로 백인들의 삶을 녹여낸 컨트리풍의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마치 히어로의 무게를 일생동안 온몸으로 받아 낸 로건의 마지막 뒷모습이 쓸쓸한 카우보이의 어깨를 연상시키면서 음악과 어울린다고 할까. 이 또한 앞의 음악과 유사한 감정을 가져오는 건 단지 기분 탓은 아닐 것 같다.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rIUKNkq6hcM)

영화 ‘로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여기서 마블과 DC의 방향성에 약간의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다. 마블 스튜디오의 색채가 좀 더 가볍고 통통 튀는 히어로의 성격과 밝은 가족 지향적인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DC의 색채는 다분히 현실적인 사회를 그려내며 그 속에서 히어로의 정체성을 되짚어 보고 그 역할과 책임감에 무게를 내려놓는 어찌 보면 범죄 드라마의 성격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관객들의 선호도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굳이 DC가 차분한 분위기를 택했다면 그 색채를 계속해서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문제는 코믹스에 비해 영화에서 DC의 흥행 성적이 마블과 비교 당하면서 경쟁사인 마블의 분위기를 어설프게 따라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절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DC의 분위기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각각의 캐릭터 또한 충분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채 살리기도 전에 어설프게 마블을 따라하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엔 DC가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너무 아깝다.

 주인공 로라 역을 맡은 배우 다프네 킨도 살펴보자. 불과 13살의 소녀가 첫 연기를 하는 것에 비해 그녀의 연기는 표정의 몰입도가 굉장하다. 덕분에 주인공 로건 역을 맡은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연기가 부담을 덜어낸 것 같다.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가 마블의 그래픽 노블 공식을 따른다면 차세대 울버린으로 활약할 배우 다프네 킨의 발전이 몹시 기대되는 부분이다.

영화 ‘로건’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영화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초반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점차 후반으로 가면서 스토리 전개를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앞의 긴 여정과 달리 너무나 쉽게 목적지인 노스다코타에 도착하는 게 대표적 사례이다. 후반부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의도적인 전개 방법이었을 수 있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부자연스러운 속도였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우리는 영화 로건(2017)을 통해 17년간 이어져 온 배우 휴 잭맨의 마지막 엑스맨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이로써 앞으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울버린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소니(Sony Pictures)는 마블과 손을 잡으면서 스파이더맨(스파이더맨 홈 커밍, 2017)을 어벤져스의 라인업에 포함할 여지를 만들어냈지만,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는 영화 로건(2017)을 통해 이를 원천봉쇄했다. 많이 아쉽지만 어쩌면 잘된 건지도 모른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래픽 노블 속 어벤져스의 여정을 감안할 때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기엔 너무나 방대한 히어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DC의 저스티스 리그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토리의 베이스가 되는 그래픽 노블 그대로 스크린을 통해 실사화하기엔 너무나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교체를 알린 이번 영화 로건(2017)이 배우 휴 잭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도 나름 최고의 예우를 다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무덤의 표지를 엑스자로 바꿔놓는 장면이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도 그 때문이다.

쟈니 캐쉬의 ‘’American Ⅳ: The Man Comes Around(2002)“ 앨범 표지 – 네이버 출처

 앞에서 언급한 엔딩 크레딧의 음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면 한다. 마치 서부시대 카우보이가 연상되는 컨트리 음악 풍의 ‘The Man Comes Around’는 거친 황야를 헤쳐 나가는 방랑자 카우보이의 일생, 엑스맨 로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최고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DC와 비교해 캐릭터를 밝게 가져가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에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 신선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마블의 케빈 파이기가 아니라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가 만들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 쿠키영상을 기다린 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스파이더맨 홈 커밍(2017)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배신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지 않을까. 로건, 영웅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