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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4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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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왓치맨

영화 ‘왓치맨(2009)’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으로서 장르를 가리는 편은 아니다. 서스펜스, 스릴러, 코미디, 멜로 등 취향을 막론하고 다양한 장르를 접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개인 취향에 민감한 공포물까지도 심심치 않게 접한다. 그렇게 무서움을 잘 타지 않지만 필자가 무서워하는 게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지나간 과거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는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과거를 굳이 되돌릴 필요는 없겠지만 좋았던 기억으로 남은 추억들은 가끔씩 넣어두었다가 꺼내어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과 영상을 찍고 앨범을 만들어 간직하곤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억의 한 순간을 편집한 것일 뿐 그 때의 생생함과 감정을 그대로 복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 삶이다.

 여기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현실을 헤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과거의 화려함에 빠져 사회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허공에 손을 대고 그저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 오늘 히어로 얘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식상해져 버린 초인적인 히어로 얘기는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둔다. 지금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때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던, 감정이 풍부한 하지만 지금은 한없이 초라한 한 인간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제 진짜 히어로를 들여다 볼 때가 왔다. 영화 왓치맨(2009)을 소개한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는 누구인가. 지난번 영화 로건(2017)을 얘기하면서 히어로의 능력과 고뇌 등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지만 알다시피 히어로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항상 곱지만은 않다. 그들의 능력을 두고 사람들이 항상 경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적어도 우리가 보아왔던 히어로들은 일반인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다소 동 떨어진 삶의 방식을 유지해왔다. 사람들이 히어로의 능력을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견제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약한 존재로써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새롭게 리부팅되고 있는 DC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살펴보면, 슈퍼맨은 정부와 협조하고자 애를 쓰지만 정작 정부는 슈퍼맨이 폭주하게 될 경우 이를 막을 나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드러낸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아만다 블레이크 월러(비올라 데이비스 분)가 태스크 포스 X의 수장을 맡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지휘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살펴보자. 영화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실수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자 정부가 소코비아 협정을 통해 히어로들의 활동을 통제하려는 장면을 보여준다. 히어로 가족의 활약을 담은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2004)에서는 주인공 미스터 인크레더블(크레이그 넬슨 분)이 자살하려는 남자를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살할 자유를 방해받았다는 명목으로 고소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역시 정부가 히어로들의 활동을 자제시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국 히어로의 활약을 그린 대부분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등은 사람들 스스로 힘을 가진 히어로들을 통제하고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히어로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영화 왓치맨(2009) 또한 시민들과 히어로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은 여타의 스토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히어로의 능력 견제에서 나오지 않고 히어로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몰입해 사람들 위에서 세상을 통제하려는 모습에서 나온다는 점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영화의 메시지가 감시자로서의 히어로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경단을 자처한 히어로의 능력과 역할에 좀 더 많은 무게를 얹었다고 보는 게 보다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 간의 핵전쟁이 임박한 암울한 냉전시대이다. 마치 미국과 북한의 대결 구도 사이에 놓여 있는 현재의 한반도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잭 스나이더 감독은 시대의 아픔과 상황을 굳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국가가 국민을 지배하는 억압된 삶의 모습을 영화의 초반, 슬로우 모션으로 나타낸 오프닝 크레딧(Opening Credit)에서 강렬하게 보여줬다. 총을 들고 시민들과 대립한 군인들의 날카로운 총구에 하얀색 꽃을 꽂아주는 소녀의 모습과 그와 동시에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 시대의 암울한 배경을 가장 절실하고도 날카롭게 대변해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화 왓치맨(2009)은 이렇듯 차가운 냉전시대 속에서 히어로로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과거의 명성과 영광을 그리워하며 냉혹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영화를 이끌고 가는 주된 스토리의 열쇠가 되는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 분)의 객기는 냉전시대에 핵전쟁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왓치맨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스스로의 과시와 오만 등이 뒤섞인 결과이다. 이는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나’라는 한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여기서 ‘왓치맨’에 대해 상세히 짚어보자. 영화 왓치맨(2009)은 앨런 무어가 집필하고 데이브 기번스가 삽화를 그린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대중을 감시하는 체재에 대한 비판은 이 작품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이를 히어로물과 결합해 뒤틀린 미국 사회에 놓여진 히어로의 고뇌와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왓치맨에 대한 대중의 평은 높은 편이다. 영화 속에서 왓치맨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하고 행동해 온 히어로 집단을 말한다. 1대 히어로 집단은 ’미닛맨(Minuteme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고, 시간이 흘러 2대 히어로 집단이 ’왓치맨(Watchme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진성장‘이라 불리는 물리학 실험 사고로 초능력이 생긴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 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로어셰크(잭키 얼 헤일리 분),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 분), 2대 실크스펙터(말린 애커맨 분), 2대 나이트아울(패트릭 윌슨 분), 오지맨디아스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다.

영화는 누군가가 코미디언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경찰은 이를 단순 강도 혹은 살인으로 결론짓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로어셰크가 왓치맨으로서의 행동을 재개,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게 되면서 그 내막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영화는 결국 스토리 리더인 로어셰크가 코미디언의 죽음이 단순한 살인이 아닌 왓치맨의 목숨을 노린 표적 살인이었음을 벗겨내면서 이를 옛 동료들에게 알리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 왓치맨(2009)은 일반적인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기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그 중 하나는, 영화의 시선이 줌인(Zoom-In), 줌아웃(Zoom-Out) 동작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필자가 유난히 많다고 느낀 줌아웃 움직임은 화면에 내레이션 또는 배우들의 대사를 우선 배열해 관객들의 시선과 귀를 한 곳에 모은 후 숨겨진 화면을 전체적으로 천천히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러한 기법은 관객들의 두뇌를 오롯이 장면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영화는 이처럼 눈으로 따라가는 화면보다 무거운 톤의 내레이션과 배우들의 대사 등 청각적 요소를 적절히 배치해 둠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스토리를 구성하는 목소리에 좀 더 집중하도록 배려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면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화면 자체도 개인적으로 아름답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역동적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채를 띠면서 전형적인 DC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스크린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어둡지 않다.

 다음으로, 영화는 특이하게도 전혀 다른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가져와 이를 액자식 구성으로 엮었다. 영화에서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신문가판대와 한 흑인 소년이 읽고 있는 검은 수송선 이야기(Tales of the Black Freighter)는 영화의 스토리와 전혀 닮지 않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맥락은 영화 속 분위기를 충분히 대변해주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자아에 빠진 선장의 모습 또한 구원을 기다리는 왓치맨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음을 어렵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연출 과정에서 액자식 구성을 가져온 건 단순히 카메라로 나타내기 힘든 부분을 붓으로 대신한 게 아니다. 감독은 오히려 카메라 연출이 아닌 애니메이션만이 나타낼 수 있는 붓 터치를 통해 표현 가능한 감정을 최대한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실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은 제법 거친데, 역경을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하는 선장의 의지와 자아에 몰입되어 악의 편으로 들어서는 감정 선의 곡선은 모두 거친 붓놀림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는 이런 독특한 연출 기법을 통해 왓치맨 개개인의 운명과 감정을 스토리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늘어놓고 있다. 코미디언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닥터 맨해튼의 사고, 로어셰크의 어릴 적 상처, 실크스펙터의 가족사, 나이트 아울의 고통 등으로 이어지며 왓치맨의 탄생과 성장사를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소개한다. 필자가 나머지 한 명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를 보게 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지맨디아스의 인터뷰 장면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 풍경을 캐치한 분이 있다면 그 분의 관찰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한다. 미국과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의 대치가 극에 달한 사회적 긴장감 속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득이 다수의 희생이 발생했을 때 왓치맨들은 둘로 나뉜다. 침묵을 원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 영화는 끝까지 암울한 분위기를 놓지 못한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다시 찾은 평화, 그게 인류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흘러간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인지할 때라고 얘기했었다. 영화 왓치맨(2009)에서 1대 실크스펙터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이는 늙어갈수록 어두워지지만 과거는 오히려 밝아지는 법이라고. 왓치맨들은 과거에 미련을 남긴 나머지 잘못된 과거를 쫓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사건의 발단이 된 코미디언의 죽음과 오지맨디아스의 판단으로 제한된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멤버들의 현실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았음은 나이트아울과 코미디언이 나누는 대화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됐느냐는 나이트아울의 질문에 코미디언이 우리가 원하던 그 아메리칸드림은 지금 바로 여기 실현됐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그 장면이다.

영화 ‘왓치맨(200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역시나 마무리는 O.S.T로 마감할까 한다. 하지만 클로징 크레딧(Closing Credit)은 아니다. 오늘은 왓치맨들의 전투가 마무리 지어지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작곡가 타일러 베이츠(Tyler Bates)의 레퀴엠(Requiem)이다. 나이트아울의 비행선 아치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나이트아울과 실크스펙터가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홀로 쓸쓸히 남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오지맨디아스의 모습은 승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여기에 흐르는 레퀴엠(Requiem)의 두툼한 무게는 마치 오지맨디아스의 어깨 위로 내려앉듯이 무겁고도 강렬한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진혼곡을 뜻하는 곡의 제목이 참으로 어울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1986)은 히어로를 다룬 내용치고는 꽤나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여기에 복잡한 연출기법을 더해 관객들의 머리를 더욱 뒤흔드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복잡한 주제와 복잡한 연출이 만났지만 그 안에 내재된 메시지만큼은 간결하고 강렬하다. 앞에서 언급한 유베날리스의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나(Who watches the Watchmen?)’라는 문장은 영화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우주는 고요하고 태초는 풍요로웠다. 시간은 쉼 없이 역동적이다. 과거에 손 내밀기보다 그 흐름에 자연스레 맡겨보는 것도 선택의 방법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