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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7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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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을 벗어던질 때가 왔다... 스테이션7

영화 ‘스테이션7(2017)’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지금까지 우주 공간은 인류에게 무한한 도전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미지의 세계 그 자체로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상상력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영화 매체에 있어서 매번 신선한 소재가 되어왔음은 물론이다.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흔히 SF영화(Science Fiction)이라고 부른다. 흥행 측면에서 SF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작품들은 수없이 많은데, 최근 에피소드 8편 ‘라스트 제다이’를 개봉해 흥행 몰이에 나선 ‘스타워즈 시리즈’와 지난 번 ‘커버넌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에이리언 시리즈’ 또한 그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SF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대표적인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을 선택할 것 같다. 유인원들이 동물의 뼈를 도구로 인식하며 하늘을 향해 뼈를 던지는 모습에서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장면 전환은 인류의 발전을 단 1초 만에 보여주는 역사적인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음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 강약과 음색이 영화에 잘 버무려져 감칠맛을 자아내는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SF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이자 상상력의 결집이기도 하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처럼 현대 영화계의 흐름 속에서 SF영화의 경쟁력은 미지의 공간 속에서 발휘되는 무한한 상상력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들은 보다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고 기존에 제시된 식상함을 뒤로 넘긴 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화면과 신선한 스토리를 기대한다. 그러한 점에서 누가 더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느냐가 SF영화계의 적자생존(適者生存) 경쟁 속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동경의 대상인 우주 공간에 실제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SF영화는 기존의 픽션(Fiction) 뿐만 아니라 논픽션(Nonfiction)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점차 확장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우주 도전 역사가 길어질수록 그 스토리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인류의 우주 도전은 미국과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이라는 강대국 간의 경쟁 구도를 기반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도전 횟수만큼의 많은 에피소드를 보유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스토리 또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제작사와 배급사, 상영관 등으로 구성된 영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강자의 역할을 맡아 그 영역을 과시하고 있는 쪽은 흔히 ‘충무로’로 통하는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로 통하는 미국 영화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 사이에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영화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이끄는 유럽 영화들이 틈새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필자 또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이들 국가의 영화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이 영화는 흔히 국내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러시아 영화이다. 좀처럼 눈과 손이 가지 않던 러시아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듣고 ‘혹시’라는 의구심과 또 한편으로 ‘혹시’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상영관을 찾았다면 설명이 될까. 실화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가 주는 감동보다도 실시간으로 관객들의 신경을 조금씩 조여 오는 긴장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영화, 클림 시펜코 감독의 ‘스테이션7(2017)’을 얘기해볼까 한다.

영화 ‘스테이션7(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사람들에게 최근 몇 년 사이 개봉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우주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2015)’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그 만큼 언론과 평론가 사이에서 수없이 언급되며 국내에서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관객 누적 수를 보자면 인터스텔라(10,309,432명), 마션(4,881,865명), 그래비티(3,227,647명)의 순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관객 수가 곧 그 영화의 가치로 이어진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들을 두고 순서를 매기는 건 크게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실제 필자는 이 세 영화에 대해 관객 수와 정반대의 점수를 주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래비티(2013)’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우주 공간에서의 불안감을 개인의 오감에 집중시켜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연출력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배우들을 통해 관객들의 집중도를 소수 인물에 모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구성해 긴장감을 배로 늘렸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에 일어나는 대재앙을 배경으로 한 ‘인터스텔라(2014)’와는 달리 개인에게 주어진 최악의 참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죽음의 공포를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선사할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영화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 포스터 – 네이버 출처

 오늘 얘기하는 ‘스테이션7(2017)’ 또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 영화 ‘그래비티(2013)’와 유사한 점이 많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오히려 좀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가장 큰 이유는 ‘그래비티(2013)’와는 달리 ‘스테이션7(2017)’이 실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스테이션7(2017)’은 1985년 우주정거장 샬루트 7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이를 현실감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기에 이 사고에 대한 배경적 지식을 가진 관객들에게 그 현장감을 보다 사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테이션7(2017)’ 또한 우주 공간에서의 배역이 단 둘 밖에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 부닥친 현실에 마주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보여주는 노력은 삶에 대한 갈구 그 이상을 그려낸다. 오히려 ‘그래비티(2013)’의 경우 매트(조지 클루니 분)가 스톤(산드라 블록 분)을 도와주는 조력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역할에 머물러 중반 이후 스톤 혼자 많은 역경들을 이겨내는 외로운 싸움을 보여줬다면, ‘스테이션7(2017)’은 블라디미르(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 분)와 빅토르(파벨 데레비앙코 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와 상황에 따른 역할이 제각기 균형을 이루면서 영화의 전개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영화 ‘스테이션7(2017)’은 여기에 또 하나의 구도를 추가했다. ‘관제센터’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우주 공간에서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이와 동시에 지구의 관제센터 또한 그들을 살리기 위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샬루트 7호와 소유즈 T-13호의 도킹 과정에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손에 땀이 흐르는 긴장감을 있는 그대로 선사하는가 하면, 화재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 과정에서 러시아 과학자들 간 격렬한 논쟁과 현실적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산소 부족으로 인해 두 명의 우주비행사 중 한 명만 복귀시켜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앞두고 어떻게든 두 명 모두 귀환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동분서주하는 관제센터 직원들의 노력은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관객들에게 인간적인 감동을 전달하는 좋은 요소가 된다.

영화 ‘스테이션7(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필자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박힌 장면이 여기에 있다. 갑작스런 선체 화재는 지구 귀환을 위한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고 두 사람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지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닥치면서 규정상 조종사 블라디미르가 샬루트 7호에 남아 홀로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관제센터는 그를 위해 아내와 딸을 센터에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지금까지 많은 SF영화들이 가족 간의 이별 장면을 연출할 때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아쉬움 등을 전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급급했던 반면, 영화 ‘스테이션7(2017)’은 이 장면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만들어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한 시도를 한다. 블라디미르의 부인 니나(마리야 미로노바 분)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권유를 받은 후 남편에게 딱 한 마디, “돌아와”만을 내뱉은 채 헤드셋을 벗어던지는 바로 그 장면이다.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지 모르는 소중한 기회를 마주하고 망설임 한 번 없이 돌아오라는 말을 외치며 헤드셋을 내려놓는 아내의 비장한 표정과 그 말을 들은 블라디미르의 안타까운 표정이 화면에서 교차되면서 관객들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실화를 다루고 있는 SF(Science Faction)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돌아오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관객들 역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영화가 오히려 픽션(Fiction) 영화였다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던 간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서 주인공을 살려낼 텐데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장면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감히 주장해본다. 이 장면을 계기로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며 영화가 새로운 러시아식 영웅주의 영화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1985년 미국과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 간의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양 국가 간의 우주 경쟁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그려낸다. 1971년 러시아가 발사한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샬루트 1호는 이후 11년 동안 7대가 발사되며 러시아가 미국을 앞질러 우주 시대를 개척하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이 영화는 유성체에 의해 고장을 일으키고 궤도를 이탈한 샬루트 7호를 수리하기 위해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소유즈호를 타고 이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시 두 명의 우주비행사는 극한의 추위, 제한된 산소와 물, 병마와 싸우며 우주정거장을 수리하는데 성공했고 불가능한 조건을 극복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다.

 클림 시펜코 감독은 이 아름다운 스토리에 약간의 양념을 집어넣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만들었다. 촉망 받는 엔지니어였던 빅토르의 아내가 그의 우주비행 과정에서 첫 출산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과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가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임무를 맡아 다시 우주로 날아가는 구성, 작별인사 대신 돌아오라는 아내의 냉철하고도 무게 있는 말 한 마디, 그리고 화재 사고로 인해 산소가 급격히 줄어드는 최악의 환경을 만드는 등의 여러 요소들은 한편으로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우주정거장과 관제센터, 우주비행사와 가족들, 미국과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이라는 입체적 구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들의 몰입 도를 배가시키는 긍정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

영화 ‘스테이션7(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필자가 이 영화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실제 사건을 다루는 논픽션(Nonfiction) 영화들이 픽션(Fiction) 영화들에 비해 처음부터 많은 불리한 점을 안고 시작한다는 점 때문이다. 관객들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 또한 부족하다는 점, 현실이 영화처럼 재미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보다 감동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은 다른 한편으로 그 만큼 관객들이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제약되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장점을 찾자면 배우들의 연기에 진정성이 가미될 수 있다는 점과 실제 현실적 상황이 전달할 수 있는 생생함이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 영화 ‘스테이션7(2017)’은 논픽션(Nonfiction) 영화가 가지는 이러한 단점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장점을 최대한으로 부각한 영화이다.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SF영화는 상상력이 모든 걸 좌우할 정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러한 상상력을 배제한 채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2시간의 러닝 타임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소재를 선택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위험을 두고 긴장감과 스릴적 요소를 군데군데 집어넣어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한 점 또한 탁월한 연출력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국내 관객들에게 소외된 아니 소개하기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던 러시아 영화가 기대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을 형성시켰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의 장점인 수준 높은 특수효과 기술이 어느 정도 배제된 채 러시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관련 기관들로부터 얻은 정보, 대규모 세트장 위주의 촬영만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영상미를 구축했다는 점은 가히 칭찬받을 만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리뷰를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바로 ‘러시아’ 영화라는 점 때문이었다. 필자는 사람들에게 선입견(Prejudice)이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한 일들을 두고 너무나 쉽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친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영화를 만나는 시간만이라도 선입견 없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대한다면 분명 영화의 색깔과 감정, 그 날의 현장감까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가 얘기하는 우주 개척사를 생생하게 접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당장 눈앞의 색안경을 벗고 저 광활한 우주를 마주하길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