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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9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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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지만... 신이 말하는 대로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잘 만들어서 보기 보다는 시간을 때우기에 적절한 영화도 있다. 제작진들의 나름의 노력과 작품의 가치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때로는 잘 만들지도 시간을 때우기 위한 킬링타임용도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계속 눈길이 가는 영화도 있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시선이 계속 스크린에 머물게 된다. 보통은 이도저도 아니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 마련이다. 필자는 실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이라는 영화를 보던 도중 극장을 나선 적도 있다.

 오늘은 이처럼 잘 만들었다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고 킬링타임용이라고 부르기엔 좀 어색한 그런 영화를 얘기해볼까 한다. 그 동안 필자는 일본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성향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훌륭한 기획력과 콘텐츠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때로는 배우들의 연기가 과장된 측면으로 흐르는(쉽게 말해 오버액션이 많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었다. 비교적 그런 느낌을 적게 받은 영화가 ‘냉정과 열정사이(2001)’, ‘아이 엠 어 히어로(2015)’, ‘이니시에이션 러브(2015)’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꼭 한 번 경험해보라고 소개했다.

 이번 영화는 지난 번 필자가 ‘아이 엠 어 히어로(2015)’를 소개할 때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 영화이다. 그 때 포스터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걸 참았다. 개인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극중 초반 장면의 정교함과 스케일에 압도당했었고 그 느낌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그 정도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그런데 말이다, 그 느낌이 사라지는 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어느 정도 파도타기를 하며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절할 줄 아는데 아, 이 영화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무언가 반전이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가졌지만 그 마저도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제대로 얘기해보자.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이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이미지 컷 – 네이버 영화 출처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왕국답게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제법 많다. 국내 영화계 또한 웹툰을 대상으로 한 영화 제작이 붐이 일고 있지 않은가. 지난 번 필자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픽션(Fiction) 영화에 비해 논픽션(Non-Fiction) 영화들이 상대적인 단점, 즉 관객들이 스토리를 이미 알고 관람하는 불리한 점을 갖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다. 그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픽션 영화보다 훨씬 더 새로운 연출력과 스토리, 진정성 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웹툰이나 만화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 또한 이러한 상황은 동일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당연히 원작을 이미 접한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스크린을 마주하며 기대하는 건 익숙함의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 혹시 이 문장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 모르겠다. 필자가 2016년 9월,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를 리뷰하며 언급했던 바로 그 문장이다. 익숙함을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 때 영화를 리뷰하며 얘기한 바 있다. 이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 또한 워낙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영화에 신선도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어떤 곳에 흥행의 승부수를 띄워야 했을까? 만약 필자라면 붓으로 그려낸 필력을 화면의 생동감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모방하느냐, 혹은 원작의 스토리를 비틀어 전혀 다른 새로운 스토리로 재구성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신선함을 제공하느냐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 개봉해 엄청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2017)’은 후자의 방법을 과감히 택한 경우이다.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매력을 뽐냈던 진기한 변호사를 아예 삭제해버리고 평범한 샐러리맨에 지나지 않았던 주인공 김자홍(차태현 분)을 희생심이 강한 소방관으로 변모시키지 않았던가. 물론 여기에 실망한 댓글러들이 이에 대한 불만들을 열심히 온라인에 남겨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무려 1,400만 명 이상의 관객 수를 넘어서며 투자비용을 충분히 회수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그렇다면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는 어떨까? 영화가 제작될 당시 원작 만화가 계속 연재 중이었기에 원작을 끝까지 접하지 못한 필자가 원작과 세밀한 비교 분석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이 엠 어 히어로(2015)’와 같이 원작의 도입부를 비롯한 일부 에피소드만 가져왔기 때문에 필자가 본 기준대로 얘기해보자면 영화는 만화의 한 컷 한 컷과 스토리를 정말 정교하고도 세밀하게 실사화하고자 노력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극중 초반 장면의 정교하고도 끔찍한 묘사와 현실감 높은 사운드(붉은색 구슬이 쏟아지며 만들어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은 특별한 게임 방식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긍정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

 영화는 주인공 다카하타 슌(후쿠시 소우타 분)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 이 기도 한 마디에 세상은 순식간에 바뀐다. 애당초 이 영화에 기승전결의 구성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관객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무턱대고 시작된 이 어처구니없는 신의 게임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의 물음표만을 안은 채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첫 번째 게임은 ‘다루마상가 코론다(오뚝이 상이 넘어졌습니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잘 알려진 이 게임은 눈이 충혈된 공포의 오뚝이를 제한된 시간 내에 막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임을 당하는 게임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죽는 거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 기분을 어디서 또 느껴보겠는가. 어쩌면 관객들은 교실 속 학생들의 시선과 공포를 그대로 느끼며 죽음의 게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기분을 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다카하타 슌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신에게 중얼거렸던 기도를 바로 거둔다. 아, 신이시여 제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다시 무료함을 돌려주세요. 하지만 다시 기도를 한다고 해서 신께서 그 소원을 쉽게 들어주는가 이 말이다. 그래서 기도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해야 하나보다.

 필자는 이런 유치한 설정 때문에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미끄럼을 타고 있다고 혹평한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설정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무섭도록 정교하고도 잔인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혹평을 한 이유는 그러한 참신한 설정들이 다른 요소들로 인해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하나를 예로 들자면 계속되는 죽음의 게임에 주인공이 너무 쉽게 살아남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게임의 방식과 긴장감은 “쉽게”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다카하타 슌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끝까지 그 어려운 신의 게임을 통과하는 아주 대단한 그리고 무척이나 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첫 번째 게임은 오뚝이의 버튼을 누른 자만이 살아남는 설정이었지만 두 번째 게임부터 주인공이 직접 게임을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규칙 자체가 바뀌었다는 식으로 영화는 교묘하고도 억지스럽게 주인공을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세 번째 게임부터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신의 게임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의 녹취 기능까지 이용하는 대담함을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신의 게임이 아니라 주인공 다카하타 슌의 게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러한 독단적인 설정은 영화의 오래된 관습, 즉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어설픈 규칙을 너무나 뻔뻔하게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초반의 긴장감을 급격히 낮춰버린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원작자의 필력을 화면의 생동감으로 정교하게 모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긴장감과 구성력을 이처럼 완전히 새롭게 살려내진 못한 듯하다. 이는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이어가려는 정교한 실사화에는 다다랐지만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해 원작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전달할 수 있는 신선한 요소가 부족했다는 설명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의 구성 또한 관객들의 기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요소이다.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 등으로 구성되는 출연진은 각자가 맡은 위치와 역할이 스토리 측면에서 명확히 구분되는데,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이끌고 풀어내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의 강약도 만들어내는 역할도 겸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마치 악보에서 오선지를 벗어난 안단테(느리게), 아다지오(매우 느리고 평온하게), 알레그로(빠르게) 등의 역할과 같이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과 ‘치어댄스(2017)’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후쿠시 소우타와 야마자키 히로나, 그리고 ‘바람의 검심(2014)’ 시리즈로 유명한 카미키 류노스케와 ‘기생수(2014)’ 시리즈로 잘 알려진 소메타니 쇼타 등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의 흐름에 강약을 조절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평범한 역할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2014), 기생수, 파트1(2014)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다 실망감만 안겨준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차기작에 대한 여운을 남긴 장면이 꽤 존재한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죽음의 공포에 맞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학교 밖 세상은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정육면체 모양의 의문의 UFO에 대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때 라디오를 듣고 있던 공사장 인부들에게 불쑥 나타나 라디오를 건드리고 사라지는 의문의 노인이라든가, 방구석에서 칩거하며 오로지 인터넷 검색만으로 연명하는 생활을 하는 의문의 젊은이가 계속해서 읊조리는 ‘신의 자식’이라는 검색어 등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들의 역할에 대한 의문 가득한 요소들이 관객들의 머릿속을 맴돌게 만든다. 이에 대해 깔끔한 해소과정 없이 영화가 마무리되는 점은 결국 차기작을 위한 포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열린 결말로 치부하기에는 감독이 늘어놓은 미장센(mise en scene)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는 원작의 수많은 게임 중 영화에 포함된 5가지의 게임 방식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그 중 가장 잔인하고 강렬한 게임을 첫 장면에 배열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아쉽고 불리한 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는 초반의 몰입도 유발이라는 부분에서 장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는 데는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용이하게 사용된 건 분명하다. 그리고 영화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데도 분명 한몫을 한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만들었다고 호평을 늘어놓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킬링타임용으로 재밌게 보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에는 다소 아쉽다는 얘기를 했던 거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모시고 신에게 기도하며 본인의 약한 마음을 애써 기대고자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god)이란 자신보다 높은 거룩하고도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러한 신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공포의 게임을 위한 대상물로 만들어버렸다.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영화로서의 경쟁력이 된다. 어느 날 신께서 나를 공포의 게임에 끌어들인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의지하며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인간은 나약하나 삶에 대한 의지와 삶을 위한 가치는 고귀하다. 하루를 시작하며 때로는 진지하게 하루를 바라보고 하루를 마감하며 때로는 경건하게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오늘 날 나약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어쩌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지 이 기회를 빌어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