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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8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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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시선이 마주한 그들... 리얼 스틸(2011)

영화 ‘리얼 스틸(2011)’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사업화실)

 누구나 그렇듯 미래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는 단어 하나가 있다. 각종 매체에서 수없이 언급된 바 있는 그 이름, 바로 ‘로봇’이다. 로봇이 어떠한 모습으로 인간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지는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묘사된 모습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고, 또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모습을 통해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냉철한 시각으로 인류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표현되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약한 인류를 감싸거나 보호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로봇의 등장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꽤나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로봇의 존재는 이미 우리 실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데, 가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청소기를 비롯해 세탁기, 냉장고 등 다양한 가전제품 등을 통해 이미 그 기능을 떨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이미 인류와 공존하고 있는 로봇의 존재를 색다른 관점에서 표현한 영화가 한 편 있다. 인류가 스포츠를 만들고 이를 즐겨온 이래, 로봇이 인류를 대신해 박진감 넘치고 아찔한 스포츠 경기의 감동을 인류에게 선사해줄 수 있다면? 실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종환 교수가 지난 1995년 세계 최초로 ‘로봇 축구’를 창안한 이후, (사)대한로봇스포츠협회는 청소년의 과학적 사고능력과 창의력 향상, 로봇기술 인재 발굴 등을 목적으로 매년 ‘로봇 축구’와 ‘국제로봇올림피아드’ 등의 대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 로봇이 가진 거칠고 파격적인 쇳덩이의 감성을 가장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종목인 ‘복싱’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복싱’을 단순히 거친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인간’과 ‘로봇’ 간의 교감은 물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로 우리에게 친숙한 숀 레비 감독이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영화, ‘리얼 스틸(2011)’이다.

영화 ‘리얼 스틸(2011)’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필자가 이 영화 ‘리얼 스틸(2011)’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어떤 장면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얘기해왔던 영화들처럼 쉽게 말해 ‘꺼리’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은 영화이다. 스토리의 독특함이라든가 감독의 연출 방향, 배우의 연기력 등 관객들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충분하면 할수록 영화를 풀어내고 끄집어내기가 쉬운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러한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영화의 ‘메시지’는 확고한 편이다. 그건 바로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실패한 ‘삼류 인생’과 ‘삼류 로봇’이 밑바닥부터 도전 인생을 펼치며 하나의 드라마틱한 성공을 해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는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며 많은 이들의 공감과 환호를 이끌어낸 바 있다. 우리 국민들이 지난 IMF시기에 메이저리그의 박찬호 선수, LPGA의 박세리 선수 등의 활약상을 통해 힘을 얻은 것처럼, 미국인들 또한 힘겹고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이와 같은 성공 스토리를 그려나가고 또 이를 통해 삶의 기운을 얻고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현재의 시점에서 제시된다면 과연 이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숀 레비 감독은 이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이러한 약점을 ‘아톰’이라는 최하층 로봇을 통해 보완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로봇의 아픔과 슬픔에 동일한 감정을 느끼며 어루만져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버려진 로봇, 그것도 애초에 복싱 선수로서의 목적이 아니라 복싱 선수용 로봇의 상대로 태어난 연습용 스파링 로봇이었던 ‘아톰’은 항상 똑같은 표정을 가졌지만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탄식과 공감을 적절하게 이끌어낸다.

영화 ‘리얼 스틸(2011)’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기까지 얘기를 하면서 뭔가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이 영화 ‘리얼 스틸(2011)’은 영화 ‘록키(1976)’의 구성과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아마추어 헝그리 복서가 우연한 기회에 프로 챔피언과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 인생 반전을 위해 도전을 하는 이야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정도로 무모한 대결이지만, 영화에 빠져든 관객들은 어느 새 헝그리 복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 분)’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내며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만다. ‘록키(1976)’의 결론을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역시나 그렇듯 주인공은 결과를 현실적으로 뒤집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적어도 관객들에게 링 위에서 어떻게 도전하고 무엇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애쓴다. 말 그대로 도전자의 피와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화면에 그려냄으로써 한 남자의 인생과 도전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 ‘리얼 스틸(2011)’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 버려진 스파링용 로봇이 우연히 한 소년과 인연을 맺고 밑바닥 인생에서 WRB(World Robot Boxing)라는 프로의 세계로 올라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년의 당돌함으로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용기와 그 세기의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역시나 그렇듯 결과를 뒤집어내지 못하는 마무리까지 많은 부분 영화 ‘록키(1976)’와 닮아 있다. 하지만 영화 ‘록키(1976)’에서 주인공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링 밖의 연인 ‘에이드리언(탈리아 샤이어 분)’을 애타게 찾으며 이름을 부르짖는 장면이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뭔가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이 영화 ‘리얼 스틸(2011)’은 ‘로봇’이라는 메시지 전달 매개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나마 안면행동 인식장치를 통해 찰리 켄튼(휴 잭맨 분)이 직접 복싱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 라운드를 함께 치르는 장면이 감정의 최고조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장면을 통해 그 동안 삼류 복서에 지나지 않았던 주인공 찰리가 옛 감정을 되새기고 동시에 스파링용 로봇인 ‘아톰’이 관객들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 ‘리얼 스틸(2011)’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는 ‘록키(1976)’에 대한 오마쥬(hommage)’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앞에서 언급했던 ‘아메리칸 드림’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노력했지만 ‘새로운 해석’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등장인물의 배치와 ‘복싱’이라는 수단, 그리고 ‘아마추어’가 ‘프로페셔널’에 데뷔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아쉽게 ‘판정패’에 접어들기까지의 장면을 너무 뻔한 스토리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똑같은 구성과 배치일지라도 연출의 주안점과 속도의 다양성을 차별적으로 구사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비교되는 ‘록키(1976)’와는 달리 이야기를 풀어내는 속도가 제법 빠른 편이다. 오랫동안 연결고리가 없었던 부자지간을 쉽게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던 고철 로봇이 아마추어의 험난한 과정을 넘어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단계에 진입하기까지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허술하다. 관객들의 입장에서 감정의 굴곡선이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수직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리얼 스틸(2011)’만의 특징과 장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로봇 복싱’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이를 정교하게 표현한 점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물론 순수하게 ‘로봇 기술’의 발전만 보여주고 나머지 생활상은 그대로인 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증관계에 놓여있던 부자지간의 감정선을 부드럽게 화면에 녹여낸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망의 대상에서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 ‘로봇’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해소시킨 점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마블 시리즈 히어로들의 과거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점은 영화가 주는 재미의 덤이다. 울버린 역을 맡았던 ‘휴 잭맨’을 비롯해, 와스프 역의 ‘에반젤린 릴리’, 팔콘 역의 ‘안소니 마키’ 등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 ‘리얼 스틸(2011)’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아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구성을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연출 방향이 비록 식상한 점은 있지만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 영화의 주안점은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영화 ‘록키(1976)’에 대한 오마쥬(hommage)’가 아니라 조금 전에 언급한 ‘부자지간’의 관계이다. 스토리 구성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부분 또한 식상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감독은 아빠와 아들의 성격과 대화를 통해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나가는데 성공했다. 이는 필자가 글을 통해 계속해서 주장했던 면대면(face to face) 화면에서 묻어나오는 역할의 균형으로써, 영화 ‘로건(2017)’에서 나타난 로건(휴 잭맨 분)과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 분) 사이에서 보이는 균형(balance)과는 또 다른 방향이다. 그런 시각으로 이 영화를 해석해본다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부자지간의 균형’과 ‘아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구성’이 다소 식상할지라도 약 127분 동안의 러닝 타임이 결코 아깝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차갑게 느껴지는 ‘로봇의 낯선 느낌’과 거칠고 박력 있는 그들만의 세계 ‘복싱의 거리감’에 부자지간의 증오와 용서로 희석되는 ‘관계의 변화’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애쓰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덧칠하며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애쓴 작품이다. 이처럼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다양한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가 가진 특징이 묻어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새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추운 겨울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따뜻한 입김으로 가득한 사랑과 감동의 한 순간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 ‘리얼 스틸(2011)’을 조심스레 선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