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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3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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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극한의 공포가 찾아온다... 언더워터

영화 ‘언더워터(2020)’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필자에게 물은 늘 공포의 대상이다. 원체 수영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물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면 바다 속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허우적거림에 연거푸 물을 들이켠다. 나에게 물위와 물속은 전혀 다른 세계다. 바다는 잔잔한 물결과 거친 파도로 언제나 매력을 선사하지만, 물위가 인간의 손길이 닿은 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재미를 안겨주는 반면, 물속은 경험한 것보다 겪지 못한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푸른빛 산호초와 같은 아름다움 뒤에는 늘 날카로운 공격을 대비해야만 할 것 같은 두려움도 전해지고 말이다. 여기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다. 치명적인 현실에 무한한 상상이 더해진다면 재미난 이야기를 마구 펼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다가 안겨주는 매력은 역시나 인간의 발길이 드문 ‘우주’라는 공간과는 또 다른 세계다.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을 맡았던 <언더 워터>(2016)는 제목과 달리 경계의 대상이 확연히 달랐다. 주인공의 행동반경은 겉에서 맴돌았고 카메라 앵글은 물위와 물속을 왔다 갔다 하기 바빴다. 덕분에 카메라 움직임에서 전달되는 공포는 제법 사실감을 보여줬지만,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도할 뿐 내면에 붙어있는 공포심을 건드리기엔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동명의 이 작품은 아직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심해의 공포를 끄집어내기 위해 과감하게 브레이크 밟기를 거부한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공포이지만 그 느낌 그대로 느껴보라는 식의 무대포 연출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말이다. 화면 곳곳에서 익숙함을 드러내지만 이를 풀어내는 속도에 정신없는 영화, <언더 워터>(2020)다.

영화 ‘언더워터(202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윌리엄 유뱅크 감독은 <더 시그널>(2014)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떡밥 던지기를 즐겨 하는 편이다. 구체적인 대상을 드러내지 않고 퍼즐 끼워 맞추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 여백의 미를 남기는데 주력한다. 이 영화 또한 그렇다.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방향을 제시하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덕분에 초반부터 강세를 높이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영화는 시작한 지 불과 몇 분 되지도 않아 화면을 강하게 흔들어대더니 마치 시한폭탄을 작동시킨 마냥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 초반부터 선사하는 이 속도감은 영화 <스피드>(1994)처럼 쉽게 멈출 수 없는 모습이다. 여기에 심해라는 배경이 추진력을 더해주는 건 물론이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사고와 사건의 전개, 제3의 물체의 등장은 이처럼 관객들의 뇌리에 처음부터 격렬한 스크래치를 남긴다.

 영화는 화려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구성 측면에서 눈에 익은 듯 피로감을 선사한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거창하게 끄집어냈던 수백여 명의 선원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등장인물을 최소화시켜 사건을 작고 강하게 압축시키려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남성과 여성 대원을 적절히 배치하고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시선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며 마치 <에이리언>(1979)의 여전사 리플리를 따라가려 애쓰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물론, 활약상은 그에 현저히 못 미치지만 말이다. 여전사 주인공 한 명, 까불대다가 죽을 것 같은 이 한 명, 그냥 인원 수 채우러 나온 듯한 인물 한 명, 겁에 질려 벌벌 대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어느 영화에서나 보던 익숙한 구성과 스토리 전개는 어쩌면 이조차 클리셰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한 느낌의 아쉬움을 진하게 남겼다.

영화 ‘언더워터(202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스토리 측면에서도 선장(뱅상 카셀 분)은 제 위치에 비해 알맞은 역할을 맡지 못했다. <블랙스완>(2010), <제이슨본>(2016) 등을 통해 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뱅상 카셀은 진지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담고 있어, 안정적인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선장 역할에 제 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한 리더십으로 대원들을 이끌기보다 오히려 제 색깔을 지우고 끌려 다니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무게감 측면에서 사실상 노라와 선장 간의 균형을 맞추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라가 선장을 발견했을 때 그의 행동, 22명을 탈출포드에 태워 보낸 후 앉아 있던 그의 뒷모습과 고장 난 문 앞에서 헤매는 모습, 노라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장면까지 컷 별로 연결되는 화면 전환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 <언더 워터>의 장점은 잘 짜여진 구성과 스토리가 주는 재미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건의 전개 속도를 통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에 있다. 다양한 구성 요소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감독의 메시지를 곳곳에 들이대는 여타의 영화들에 비해 연출과 줄다리기를 안 해도 되니 관객들이 영화를 읽기가 수월하다. 여기에 1인칭 시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 때문에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관객들의 신경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하기도 하다. 또한 스토리 전개 과정이 생각 외로 솔직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로로 진행된다는 점과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제시되는 여러 떡밥들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보다 감독 특유의 연출 기교로서 받아들인다면 보다 이 영화만의 장점에 집중하는데 편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언더워터(202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제작과정까지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심해를 표현하는 카메라 워크가 화려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어둠과 물의 무게감을 영상과 사운드를 통해 적절히 표현하고 관객들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압박했다. 배우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사운드로 주변을 감싸고 사건을 계속 만들어 화면을 가득 채우니, 관객들이 화면 속에 고스란히 빨려 들어가고 만다. 한 마디로 스토리 자체는 예상되는 바가 있어 긴장감을 다소 떨어뜨리지만 영상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함이 눈을 뗄 수 없게끔 만든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 영화 <언더 워터>는 몰입감이라는 장점과 진부함이라는 단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만큼은 진부함은 익숙해지고 몰입감은 점점 커져간다는 점에서 영화가 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스펙터클함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