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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3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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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란 없다. 원테이크 좀비액숀...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살아있는 시체들의 사회, 흔한 좀비영화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니다. 좀비물을 접할 때마다 늘 내가 꺼내던 말이다. 좀비가 공포의 도구로 사용되던 시기는 이제 지났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은 어느 순간 사람들을 정형화시켜 버렸고 우리는 그 틀 속에서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유튜버 등으로 대표되는 크리에이터들도 새로운 매체의 발달에 따라 파생적으로 생겨난 것일 뿐이다. 결국 새로운 틀이 하나 더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새롭게 이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어떻게 하면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 그 생각이 계속 이어질 때 우리는 좀비와 같은 반복된 행동에서 벗어나 의식을 우선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좀비가 단순히 공격적인 모습을 띄는 것을 넘어 최근 들어 영상 속에서 반복된 행동과 학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러한 효과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일상을 휘젓고 다니는 카메라를 멈추지 말라고 외치는 메시지도 이와 같다. 의식의 전환, 혹은 의식의 계발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도록 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거다. 적어도 그 행위와 도전의 시도가 우리 삶의 틀을 넘어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점을 열어젖힐 수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 그런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타카유키(하마츠 타카유키 분)가 요청받은 제작사의 요구사항도 이런 의도가 포함됐던 건 당연하다. 실질적인 공포를 표현하는 좀비영화에 있어서 라이브 방송과 원테이크 촬영을 제안 받았을 때 타카유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만다. 좀비물은 사실적인 분장과 특수효과로 관객들을 쉴 새 없이 몰아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라이브 방송과 더불어 카메라가 끊어짐 없이 원테이크로 진행된다면 보다 많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작사의 요구를 승낙한 건 스스로가 처한 자신감의 결여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비단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 속 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씩 결여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옛 배우 시절 가슴 속에 박혀버린 콤플렉스를 쥐고 있는 하루미(슈하마 하루미 분)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채 정해진 규칙을 있는 그대로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의 마오(마오 분),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수전증이 오는 이를 비롯해 정제된 물을 마시지 않으면 복통이 발생하는 이까지. 모두가 어딘 가 나사 하나가 풀린 마냥 스스로를 정상적인 모습에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이의 부족함을 다른 것들로 대체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 적격이었으며, 라이브 방송과 원테이크를 향한 도전이 그들의 용기를 불러일으켜 세웠다는 해석이다.

 영화는 단순히 어설픈 이들로 구성된 좀비영화가 라이브 방송과 원테이크라는 새로운 시도로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도전기를 그렸다는 말로 수식하기엔 아쉬운 감이 크다. 오히려 출연진의 면모를 찬찬히 비춰보며 이들 각자가 맡은 역할과 캐릭터가 자신을 어떻게 완성시켜 가는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류훈 감독의 영화 <커튼콜>(2016)과 비슷한 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일류가 아닌 이류, 아니 삼류 인생들이 모여 제대로 된 정극에의 도전으로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충전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그들은 결코 단 하나의 노력으로 인생을 뒤바꾸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단지 본인이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온 자신의 삶을 한번만이라도 바로 잡고자 하는 순수한 욕구가 강했던 거였다. 이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도 마찬가지다. 비록 무대는 다를지라도 카메라 앵글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반드시 이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강력한 열정이 작품의 마무리를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는 약 30분가량의 실제 방송된 작품과 그 방송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유쾌한 웃음과 함께 담아내고 있는데, 이들 사이의 괴리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건 감독의 연출력이 지대한 영향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스토리의 리듬을 유려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만큼 충분한 무게를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전혀 부담 없이 흘려보내는 건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 행동 등을 세밀한 터치로 표현하고 있어서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라이브 방송에서의 우여곡절 요절복통 이야기가 아찔한 순간을 연발하게 만들지만, 오히려 관객들에게 유쾌한 재미로 다가오게끔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재미가 있다. 초반 30분에 약간의 지루함과 혼란 가득한 도구들이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후부터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오히려 극의 짜임새를 높여주는 기교로 다가온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놓치는 것 하나 없이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음은 연출의 부지런함이 드러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방송은 어찌되었건 흘러간다. 그게 방송사고가 됐든 아니면 어설픈 미완성의 스토리대로 채워지던 간에 모든 게 겉만 읽어내면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하나의 현상을 돌려 읽을 수 있는 다른 시각의 반전을 찾아보게 만든다. 애초에 사회는 변화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 사회의 틀을 깨부수기 위한 새로운 용기와 도전이 여전히 견고한 틀을 건드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라는 사실이 부각되는 이유다. 지미집이 부서지자 여러 명이 모여 인간 피라미드를 만드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 하나가 무너지면 또다시 달려들고 또 하나가 무너지면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또 올라가고 그렇게 해서 안 되면 다른 이들이 메워주는 형태. 결국 카메라는 흔들리지만 절대 멈출 수 없다는, 아니 멈춰서는 안 된다는 그 외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는 이처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끊임없는 메시지를 던져댄다. 덕분에 이를 받아들이는데 큰 무리는 없다. 다만 여백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보다 구성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빈 공간, 즉 작은 구멍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재미 측면에서 좀 반감되는 구석이 있더라도 말이다. 유쾌하지 않은 내용을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를 하나의 영상으로 잘 꾸며내고 있기에 이 영화가 가지는 무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신이치로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도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화면이 전혀 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였다는 사실 말이다. 이 영화를 다 보고 완성된 방송에 대한 색깔이 달리 채색됐다면 지금 당장 거울 앞에 서보기를 권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게 바로 당신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