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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3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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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노벨상, 플라스틱!

어디에나 있는 노벨상, 플라스틱!

어디에나 있는 노벨상, 플라스틱!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질은 무엇일까요? 순위를 꼽는다면, 플라스틱이 상위권에 들어가리라는 건 분명합니다. 음료수병, 포장 용기, 장난감, 볼펜 등 각종 생활용품의 재료로 쓰이는 게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환경 문제 때문에 사용을 자제해야 하지만, 플라스틱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는 1907년에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레오 베이클랜드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해 만들었지요. 초창기에는 당구공이나 전화기, 라디오 같은 곳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쓰임새를 넓혀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하기까지는 많은 과학자의 공헌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분자로 이루어진 플라스틱

헤르만 슈타우딩거 / 출처 : 사이언스올

 과학자들은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플라스틱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플라스틱은 합성 고분자 물질(중합체)의 일종입니다. 작은 단위체가 수없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 분자량이 매우 큰 물질을 말합니다.

 플라스틱의 화학적 원리를 처음 밝힌 사람은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였습니다. 고무에 관해 연구하던 슈타우딩거는 1920년 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작은 단위체가 사슬처럼 결합한 거대한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화학자 대부분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슈타우딩거는 연구를 계속 이어나갔고, 시간이 지나자 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화학자 헤르만 마크는 엑스선으로 중합체의 구조를 분석해 단위체가 긴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는 증거를 얻었고, 월리스 캐로더스는 슈타우딩거의 이론을 활용해 나일론과 같은 물질을 합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결국 ‘거대한 분자’라는 이론이 사실로 드러났고, 슈타우딩거는 1953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플라스틱 시대를 열다

폴리에틸렌 / 출처 : NAVER 화학백과

 슈타우딩거가 노벨상을 받은 해에 독일 화학자 칼 지글러는 알루미늄 화합물을 촉매로 이용해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덕분에 이전보다 낮은 압력과 온도에서도 폴리에틸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 이탈리아 화학자 줄리오 나타는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폴리프로필렌을 만드는 데 적용했습니다.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플렌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플라스틱입니다. 비닐봉지, 식품 포장용 랩, 음료수 팩의 내부 코팅, 장난감 등 각종 제품에 사용하는 게 폴리에틸렌입니다. 폴리프로필렌도 물통 같은 식품 용기, 가전제품에 널리 쓰이며, 코로나19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매일 쓰고 다니는 마스크의 부직포의 원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지글러-나타 촉매를 이용해 만듭니다. 이들의 연구는 원하는 대로 중합체는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세상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이게 해준 일등 공신인 셈이지요. 두 사람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플라스틱도 전기가 흐른다

시라카와 히데키 / 출처 : 사이언스올

 전기가 흐르는 전선은 보통 플라스틱 피복으로 감싸 놓습니다. 합선이 되거나 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덮어 놓는 것이지요. 이렇게 플라스틱은 흔히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전자제품의 내부 부품이나 케이스 등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도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의 시라카와 히데키, 미국의 앨런 히거와 앨런 맥더미드는 전도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볍고 유연하면서도 전기가 통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 세 사람은 2000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한국인 과학자의 공로도 있습니다. 1970년대에 시라카와 히데키와 같은 연구실에 있었던 변형직 박사가 실험 도중 우연히 성공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 교수에게 후속 연구에 대한 허락을 받지 못한 채 시라카와에게 자료를 넘겨주고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전도성 플라스틱에는 큰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등에 쓸 수 있고, 정전기 방지 물질이나 가벼운 전자파 차단 장치, 웨어러블 전자기기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막연히 플라스틱은 다 전기를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겁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