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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6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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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하나의 현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사회 속에서 대부분 타자(他者)에 의해 연출된 것들 위주로 접하고 살아가지 않는가. 여러분들의 출퇴근길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광고 메시지를 보고 듣고 접했을까.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 이를 테면 우리가 걷는 도로와 건물의 출입구, 신호등에 의한 멈춤까지도 모두 사회가 만든 의도된 안내로 제각기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다. 지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형화된 것들을 달리 바라보는 방법은 없을까. 이유는 몰라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결과가 나타날지 모른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우선 현상을 뒤집은 후에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우연이 가져온 놀라운 성과와 변화를 수차례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또한 연출된 행위의 노출인 만큼 메시지 소구를 위한 정형화된 방식을 가진다. 관객들에게 지극히 익숙한 이 이론을 과감히 뒤집은 영화가 있다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한 그 정신과 용기에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낸다. 오늘은 그런 도전적인 작품 하나를 얘기해볼까 한다. 갖가지 실험과 현상을 돌려 생각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는 유럽 대륙 동쪽 끝 경계선의 주브로브카 공화국에 위치한 한 호텔을 두고 일어나는 사건을 재미나게 그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소유주인 마담D(틸다 스윈튼 분)는 가끔씩 호텔을 방문해 호텔 지배인인 무슈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즈 분)와 사랑을 나누는 거대 부호이다. 어느 날 호텔을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담D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가 남긴 재산에 관심을 가진 친척들이 모두 모이게 되고 전담 변호사 코박스(제프 골드블럼 분)가 유언장을 낭독하는데 여기서 그녀가 호텔 지배인인 무슈 구스타브에게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하지만 마담D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한 살인이었음이 드러나게 되면서 그녀의 유산을 노리던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무슈 구스타브를 의심하게 되고, 영화는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무슈 구스타브가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 분)와 함께 도망을 다니며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애를 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평범함을 벗어던진 ‘화면’이다. 영화의 화면을 설명하기 위해 글의 서두에서 장황하게 새로운 도전과 익숙한 현상 뒤집어 보기를 끄집어냈다. 영화는 달리 보면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를 전달하는 화자(話者), 즉 배우 혹은 내레이션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들에 의해 흘러가기 때문에 카메라 워킹은 줄곧 이들을 따라다니게 된다. 대사를 읊는 배우가 있는데 카메라가 딴 곳을 응시하고 있다면 감독의 연출 의도가 있거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메타포(Metaphor)가 존재해서이다. 예를 들어, 두 명의 배우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배우들 대신 어느 한쪽 구석을 비춘다거나 특별한 사물을 클로즈업할 경우 이는 그 사물이 사건과 연관되었거나 실마리를 풀 열쇠를 암시하고 있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관객들의 시선에서 카메라는 서사 구조상 줌인(Zoom-in) 혹은 클로즈업(Closeup)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의 의도를 표현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의 시작부터 이러한 정형화된 틀 깨기를 즐기는 듯하다. 묘령의 여인이 어느 작가를 기리기 위해 올드 루츠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영화의 첫 장면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카메라 워크를 벗어던진 채 다소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2차원 화면을 선사한다.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노령의 작가(톰 윌킨슨 분)가 인터뷰를 시도하는 다음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터뷰 대상인 작가의 시선은 열린 공간을 완전히 배제한 채 정면의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응시한다. 또한 카메라 워킹은 일반적인 시선과 별개로 줌인(Zoom-in) 대신 줌아웃(Zoom-out)을 자주 시도한다. 마치 스크린에 수채화를 살포시 걸어놓은 양, 배우들보다 배경을 좀 더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양새다.

 화면의 색감은 앞서 얘기한 수채화와 다를 바 없다. 원색을 최대한 살린 채 마치 봉숭아물을 들인 것처럼 화면 속 모든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화려하다. 여기에 카메라의 시선은 평범함을 일찌감치 벗어났다. 일반적인 카메라 각도는 관객들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 사람의 눈높이 혹은 조금 아래에서 위를 살짝 바라보는 워크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상식을 과감히 깨버렸다. 그야말로 상하좌우 종횡무진이다. 하나의 화면 안에 멀리 떨어져 있는 배우들을 함께 담아 원근감을 대폭 살리는가하면 심지어 천정에서 아래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도전도 서슴지 않는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구도이지만 모든 장면들에서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의 작품 로얄 테넌바움(2001), 다즐링 주식회사(2007) 등을 통해 이러한 시선을 표현하는데 특유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두 번째는 익숙함을 벗어던진 ‘스토리’이다. 해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 관객들에게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너무나 흔하고 흔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흔한 소재인 ‘살인사건’은 크게 2가지 요소로 귀결된다. 하나는 ‘누가(Who)’,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왜(Why)’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2가지 요소는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그들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궁금증을 해소할 열쇠를 찾기 위해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일반적인 영화들은 여기에 액션을 선보이거나 공포효과를 가미하는 등의 방법으로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하는데,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눈에 띄는 조미료 없이 잔잔함을 유지하면서도 순수하게 ‘누가(Who)’와 ‘왜(Why)’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익숙함을 벗어던지려는 시도를 몇 가지 언급할 수 있다. 하나는 ‘누명’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무슈 구스타브에게 누명을 덮어씌우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구치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는가 하면 마담D의 아들 드미트리가 고용한 살인청부업자 조플링(윌렘 대포 분)의 위협과 대치하는 등 영화 전반에 잔잔한 영상을 뒤흔드는 파도를 집어넣었다. 또 하나는 ‘유산’이다. 거대 부호 마담D가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기면서 과연 누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차지하게 될는지에 궁금증을 더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이러한 의문부호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 앞서의 2가지 요소를 풀기위한 열쇠를 찾으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력자’를 얘기할 수 있다. 영화는 초반 장면에서 젊은 작가(주드 로 분)가 호텔의 주인인 제로 무스타파(F.머레이 아브라함 분)를 만나는 화면을 보여주는데 관객들은 로비보이 제로가 조력자로서 어떤 역할을 통해 호텔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었는지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마지막으로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리는 ‘캐스팅’을 얘기할 수 있겠다.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등에 출연하며 봉준호 감독 사단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 역으로 출연한 레이프 파인즈, 아마데우스(1985)에서 광기에 찬 살리에리를 연기했던 명배우 F.머레이 아브라함, 플래툰(1986)의 일라이어스 중사, 윌렘 대포,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서 브루스 배너 역을 맡았던 에드워드 노튼, 플라이(1986)에서 충격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해주었던 제프 골드블럼,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의 명사수 바실리 자이체프인 주드 로,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엉뚱 박사 피터 뱅크만, 빌 머레이 등의 출연은 영화 속에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치의 극을 달리는 화려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한나(2011)의 시엘샤 로넌과 007스펙터(2015)의 본드걸 레아 세이두, 그리고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의 플래시 톰슨 역을 맡은 토니 레볼로리는 떠오르는 신예로서 이 영화를 제법 진지하게 거쳤다. 필자가 화려한 캐스팅을 마지막으로 언급한 건 이 영화가 단순히 영화계에서 엄청난 이력을 지닌 명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 퀄리티의 명배우들로 출연진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그들의 역할이 제각기 적절한 무게를 유지하고 있어서이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엄청난 연봉을 주고 데려온 스타군단들이 조직력 강한 팀에게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이 영화에 출연한 명배우들은 스타군단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이력과 연기력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한 연기와 자제력으로 그들의 품격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화려한 스타이지만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 등의 위치에서 적절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음에 필자는 그들 모두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보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풀어내는 노령의 작가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셀프 인터뷰를 시도하는데, 그는 작가가 스토리를 순수하게 창작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꺼낸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자막과 일맥상통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작가로서 옛 유럽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아내와 함께 동반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평론가 L씨는 이 영화에 대해 옛 추억을 잊지 못하는 향수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로 평가했지만 사실 필자는 이 영화를 ‘향수’라기 보다 ‘집착’이라는 단어로 소개하고 싶다. 주인공 무슈 구스타브가 파나쉬 향수와 멘들 빵집의 케이크에 집착하는 것도 이를 대변하는 좋은 예가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토리는 ‘향수’ 또는 ‘집착’과는 별개의 내용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영화를 달리 표현하자면 색다른 색채와 재미난 스토리, 그리고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가려진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력 등이 적절히 버무려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얘기해보면 어떨까. 이를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는 향수라고 굳이 칭한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어른들의 삶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한 아름다운 꿈을 꾸는 동화가 되기를 바란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똑같은 환경을 정형화된 틀을 깨고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현대사회에서 그만큼 대단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 시대 어른들이 한번쯤 꿈을 꿔도 좋을만한 휴양지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