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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0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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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어둠이 두렵게 느껴질 때... 제인 도

영화 ‘제인 도(2016)’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회협력사업화실)

 영화를 보는 시선은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추리물의 경우 시나리오의 치밀함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코믹물의 경우 웃음을 유발하는 배우의 연기나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며, 액션물이라면 배우의 현란한 움직임과 화려한 무대 혹은 제작비의 스케일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SF물이라면 컴퓨터그래픽의 기술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포물의 경우에는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음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각적 장치에 매력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틀에 박힌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트렌드도 이미 그 유행을 넘겨버린 것 같다. 요 근래 개봉되는 영화들의 대다수는 투입되는 제작비의 규모만큼이나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눈높이는 하늘을 뚫고 오를 기세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이러한 경향이 유독 심한 것 같다.

 공포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제목은 들어봤음직한 한 영화가 있다. 1973년 개봉된 ‘엑소시스트(1973)’은 악령이 빙의된 한 소녀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소녀의 몸으로부터 그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한 가톨릭 신부의 노력과 사투를 그려낸 영화이다. 이 영화가 당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 시대의 유행답게 관객을 놀래키는 날카로운 음향과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눈과 귀로 접할 수 있는 공포물의 정형화된 요소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필자는 그 이유를 공포를 해석하려는 속도의 완급 조절이 기가 막혔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빨간 물감이 가득한 괴기스러운 분장과 어둡고 음산한 사운드로 화면을 채워 호러 무비로 접근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해 비과학적인 내용을 이성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려했던 감독의 연출 기법이 관객들에게 높은 호응을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얘기이다.

영화 ‘제인 도(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흔히 오컬트(Occult) 무비라고 얘기한다. ‘오컬티즘(Occultism)’은 일반적인 현상을 넘어선 초월적 현상 또는 숨겨진 힘 따위를 추구하거나 연구하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하는 점성술, 강령술 등이 이에 속한다. ‘심령주의(Spiritualism)’가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관점에서 초자연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오컬티즘’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물리적 영역 이외의 다른 영역에 대한 탐구를 하는 형이상학적인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위키백과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C%BB%AC%ED%8A%B8). 일반적인 영(靈)에 의한 공포를 추구하는 여곡성(1986), 폴더가이스트(1982) 등의 영화가 심령주의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면, 악마의 씨(1968), 엑소시스트(1973), 컨저링(2013) 등은 오컬티즘에 입각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오늘 꺼내보고자 한 영화도 이렇게 오컬트 요소가 곳곳에 포함된 저예산 고효율, 즉 가성비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음산한 분위기 이전에 형이상학적인 요소들을 세밀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안드레 외브레달 감독의 ‘제인 도(2016)’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영화 ‘제인 도(2016)’는 시체 부검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토미(브라이언 콕스 분)와 아들 오스틴(에밀 허쉬 분)이 어느 날 보안관의 긴급한 의뢰로 신원 미상인 젊은 여인의 시신을 부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하루의 일을 그리고 있다. ‘제인 도(Jane Doe)’는 일반적으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신원 미상의 여인을 지칭할 때 부르는 말이다. 남자일 때는 ‘존 도(John Doe)’, 아기일 경우 ‘베이비 도(Baby Doe)’라고 부른다. 스토리를 풀어내는 주된 공간이 시체 부검소라는 점에서 영화의 장르가 공포물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피가 난무하고 배우들의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지는 끔찍한 호러 무비는 아니다. 오히려 시체 부검소라는 특이한 무대답게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한 마디의 사운드 또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 등이 관객들의 눈과 귀에 스며든다. 그 순간 손가락 마디마디에 느껴지는 차가운 무언가, 관객들의 오감에 전율을 일으키는 그 요소가 바로 이 영화의 백미(白眉)이다.

영화 ‘제인 도(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러 영화제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다양한 호평을 얻은 바 있는 영화 ‘제인 도(2016)’은 심지어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컨저링(2013)의 공포보다 낫다는 호평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평으로는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달리 말하자면 언급한 영화들 사이에는 공포를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과 목표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공격을 받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영(靈)적 존재의 물리적 공격을 핸드헬드(Handheld) 기법을 통해 현실감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컨저링(2013)은 인형이라는 사물에 스며든 영(靈)에 대한 직접적인 공포를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사람들이 공포심을 강하게 느끼는 귀신, 영(靈)에 대한 두려움은 영화에서 이미 자주 다룬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을 만들기 쉽지 않지만 영화 컨저링(2013)은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실화에 기반을 두고 실제 인형이 보관된 사진들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반면 이 영화 ‘제인 도(2016)’은 눈앞에 놓여있는 시체가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귀신, 영(靈)과 같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눈앞에 놓인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그 공포가 앞의 두 영화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온다고 하겠다.

영화 ‘제인 도(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필자가 영화를 보고나서 알게 된 이 영화의 또 다른 신선함은 배우 올웬 캐서린 켈리이다.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어야 했던 이 배우의 극중 역할은 놀랍게도 ‘제인 도’였다. 이쯤 되면 영화 속에서 시체가 걸어 나온다거나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거나 혹은 요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기가 막히게도 시체는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부검소에 누워있다. 반전 하나 없이 발견된 그 상태로 시작해 영화의 막이 내릴 때까지 ‘제인 도’는 가만히 누워만 있다. 이 역할에 마네킹이라거나 또 다른 미술장치를 사용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실제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는 건, 다시 말해 배우 올웬 캐서린 켈리가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가만히 누운 채로 시체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걸 말한다. 절대 움직이지도 않고 숨도 크게 쉬지 않은 채 말이다. 현대의 기술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데, 충분히 미술장치를 사용하거나 컴퓨터그래픽(CG)를 이용해 시체의 생동감을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제 배우가 계속해서 누워 있는 연기를 택했을까. 하지만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올웬 캐서린 켈리의 열연덕분에 생동감이 가득한 아니 바꿔 말하면 공포감이 가득한 시체를 두 눈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제 배우 올웬 캐서린 켈리는 ‘제인 도’ 역할을 위해, 요가를 배워 부검소에 누워있는 동안 복식호흡으로 생동감 넘치는 시체 연기를 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도하는가 하면 촬영할 때마다 지독한 특수 분장을 하고 씻어내고 또 하고 씻어내고를 반복했다고 하니 그 엄청난 노력에 진심으로 감탄을 마지않는다.

 또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를 얘기해보자. 영화는 마을의 작은 시체 부검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카메라의 워킹은 제법 남다르다. 스토리를 이어가려는 역할보다 순간의 공포를 찍어내기 위해 상하좌우 다양한 각도에서 부검소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필자는 영화를 볼 때 유난히 카메라 워킹을 신경 쓰며 감상하는 버릇이 있는데 카메라의 촬영 각도는 곧 관객들의 시선과 일치하므로 그 시선을 표현하려는 감독의 연출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제인 도(2016)’의 카메라 시선은 꽤나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의 움직임, 돋보기를 들여다보듯 상당한 클로즈업을 이끌어내는 시선 등은 시체 부검소라는 장소가 주는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적인 카메라 시선과는 차이가 난다. 흔히 일반적인 공포물은 공포의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카메라 워킹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개구리가 뛰어오르기 전 온몸을 웅크리듯이 잔잔한 움직임을 사전에 깔아놓다가 휙~하며 갑자기 방향을 전환시키는 그런 움직임 정도는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밑밥은 카메라 워킹이 아닌 사운드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영화 싸이코(1960)의 그 유명한 욕실 씬(Scene)의 경우 버나드 허먼(Bernard Hermann)의 음악이 그런 역할을 했다. 반면 영화 ‘제인 도(2016)’은 사전에 깔아놓은 밑밥을 통해 깜짝 놀래키는 효과를 던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의 머릿속 ‘설마’ 또는 ‘혹시’라는 단어를 ‘역시’로 바꿔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공포는 관객들의 머릿속을 점점 더 죄어오는데 그게 바로 앞에서 ‘엑소시스트(1973)’을 얘기하며 언급했던 속도의 완급 조절을 설명해주는 내용이라 하겠다.

영화 ‘제인 도(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를 보다보면 안드레 외브레달 감독이 늘어놓은 미장센(mise en scene)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혹은 공포감을 형성시키기 위한 연출 의도로 판단되는 움직임들이 이어지지만 뚜렷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인 도’의 몸에서 나오는 파리의 움직임, 발가락에 매어진 종, 갑자기 흔들리는 라디오 주파수, 고양이의 죽음 등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특정 사건들은 단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의식의 반복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들은 하나하나씩 단편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이들을 모두 엮어 결말로 이어지게 만드는 감독의 의도적인 미장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화면을 빨간 피로 물들이는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vie)와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에 관객들이 환호하던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난 듯싶다. 이블데드(1981)과 같은 하드고어 무비(Hard-gore Movie)는 더더욱 흥행을 몰기에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얘기해 온 오컬트 무비(Occult Movie)가 각광을 받는 시기 또한 분명 아니다. 관객들은 현 시대의 공포물에게 시각적, 청각적인 트릭보다 오감을 넘어선 육감적인 자극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포감은 물론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할 만큼의 강렬한 반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제 스크린 속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생생한 리얼리티를 경험하는 것, 그러한 요구가 퍼시픽림(2013)과 같은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뿐만 아니라 제인 도(2016)과 같은 공포물에도 3D, 4D영화관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는 이 영화 제인 도(2016)이 중간 이상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라 온몸을 휘감는 전율 그 자체라는 점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필자가 주장한 속도의 완급 조절을 해내는 감독의 연출 방식이 장점으로 나타난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비가 지나가고 어느덧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른한 봄날의 오후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면 버지니아의 작은 시체 부검소를 방문해 침묵과 어둠의 공포를 생생하게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