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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1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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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버린 믿음을 메워줄 마지막 퍼즐 조각은...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사업화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영화 용어 중 ‘클리셰’라는 용어가 있다. 연판(鉛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가 원조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판에 박은 듯 사용되는 상투구 혹은 진부한 표현을 지칭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장르에 따라 멜로물은 당연히 행복한 결말을 가져온다거나, 콤비를 이루는 액션물에서 백인과 흑인이 항상 콤비를 이룬다거나 하는 예들이 대표적인 클리셰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조금만 확장시켜 해석해보면 장르에 상관없이 시리즈물도 흔한 클리셰를 가진다. 각각의 시리즈를 시간대별로 연결해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등장인물을 둘러싼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형식 또한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다. 갈등상황을 둘러싼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주인공과 조력자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이 해당 사건을 하나씩 해결하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결말은 너무나 익숙하고 뻔한 스토리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러한 클리셰도 시대별로 유행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연출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지난 해 5월, 필자가 직설적인 감상을 남겼던 영화가 있다. 겉으로는 시리즈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시리즈와는 너무나 다른 연출 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영화를 두고 “잠시 길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사라졌다고 말하면서 감독이 만들어 낸 서사를 연재 형식으로 늘어놓는 스타워즈나 에이리언 시리즈 등과는 표현 방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얘기했었다. 이는 1편과 2편의 형식이 판이하게 달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 개봉할 3번째 스토리를 보고나서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는 드디어 기다렸던 3번째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줄리어스 오나(Julius Onah)가 연출하고 스타트렉 비욘드(Star Trek Beyond)를 집필한 더그 정(Doug Jung)과 오렌 우지엘(Oren Uziel)이 각본을 맡은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를 오늘 얘기해볼까 한다.

영화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는 배드로봇 프로덕션의 J.J. 에이브람스(J.J. Abrams) 사단이 만들어내고 있는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예전에 얘기했듯이 1편은 뉴욕 한 복판에 갑작스런 괴수가 나타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공포가 아닌 재난영화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2편은 한정된 공간과 제한적인 등장인물로 구성해 전형적인 밀실 공포의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3편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로 이를 발전시켰는데, 이처럼 3가지 작품 모두가 연관성이 낮은 독특한 접근법을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흥미 혹은 혹평(?)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를 자세히 얘기하기에 앞서 1편과 2편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클로버필드(2008)를 소개하면서 10번지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한 이유는 영화가 2편에 접어들며 스토리가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나 급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사용한 모큐멘터리 스타일의 1편과는 달리 재난 상황을 맞이한 등장인물들이 누군가에 의해 밀실에 갇혀 심리적인 공포를 맞이하는 2편의 구성은 일반적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시리즈물은 하나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이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경우, 첫 번째 소개된 에피소드4(1977)는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 분)가 레아 공주(캐리 피셔 분), 한 솔로(해리슨 포드 분) 등을 만나 제국군에 함께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고, 곧이어 개봉한 에피소드5(1980)는 루크가 아버지의 과거를 쫓아 제다이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과정을 담아냈으며, 에피소드6(1983)은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데이비드 프로우즈 분)가 사실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동시에 레아 공주가 쌍둥이 누이라는 가족사를 공개함과 동시에 진정한 제다이로서 악에 맞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참의 공백 기간을 넘어 이후 개봉한 에피소드1(1999)~3(2005)은 이러한 가족사가 탄생하게 된 배경, 즉 애너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 분)가 어떻게 다스베이더가 되었는지, 그리고 제국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주력한다. 이후에 소개된 에피소드7(2015)~8(2017)편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영화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하지만 이 영화 클로버필드는 이러한 일반적인 서사 형식을 가지지 않는다. 1편(클로버필드, 2008)은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사용해 급작스럽게 출연한 괴수의 지구 침략으로부터 도망치는 주인공들의 피난기를 그려냈고, 2편(클로버필드 10번지, 2016)은 전혀 다른 등장인물을 소개하며 밀실에 갇힌 자와 밀실에 가둔 자 사이의 심리 대결을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스케치로 표현했다. 물론 촬영방식이 핸드헬드가 아님은 물론이다. 당시 제작사는 2편을 ‘발렌시아’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며 나름의 신비주의 전략을 펼쳤지만 결국 개봉이 가까워 옴에 따라 ‘클로버필드 10번지’라는 제목을 드러내며 영화의 시리즈에 신호탄을 쏘았고, 3편(클로버필드 패러독스, 2018) 또한 지금까지 ‘갓 파티클’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라는 타이틀을 끄집어내며 시리즈의 한 편을 장식했다. 이쯤 되면 억지로 우겨넣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요즘처럼 인터넷 망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는 비밀을 간직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 ‘갓 파티클’이 클로버필드 시리즈인걸 모르는 사람도 있었던가. 필자는 이미 올해 말 클로버필드의 4번째 시리즈 ‘클로버필드 오버로드’가 개봉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두려워 신비주의 전략을 펼치고 싶다면 분명한 목적과 방법이 뒤따라야 하는데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이도저도 아닌 전략을 펴고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인 것 같다. 물론 배드로봇의 J.J. 에이브람스는 그 누구보다 유명한 밑밥(혹자는 떡밥이라고 얘기하는) 던지기에 일인자로 소문난 제작자이지만, 거기에 혹해서 덥석 무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자. 여기에 흥분하며 논쟁을 파고들다간 감독의 의도대로 휘말리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배경은 우주이다. 에너지원이 고갈되어가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결국 다국적 소속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정거장 클로버필드에 모여 입자가속기 셰퍼드를 이용해 무한 에너지원 획득을 위한 도전을 계속하게 된다. 수년간의 실패에 지쳐가던 이들은 어느 날 셰퍼드 실험에 성공하게 되지만 이와 함께 지구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전혀 본 적이 없던 새로운 동료가 나타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제야 본인들이 다른 차원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게 되는 데 영화는 대원들의 이러한 노력 과정을 일반적인 시각으로 그려낸다. 필자가 스토리에 대해 감히 논하자면 개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영화의 스토리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일단 전체적인 배경과 구성 등이 상당히 도식적이다. 우주 공간에서의 또 다른 차원, 대원들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현상, 심리적인 불안감 등 관객들에게 너무 익숙한 구성과 스토리로 영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억지스러운 짜 맞추기가 눈에 뻔하게 보이는 점도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대원들이 하나둘씩 사고를 당하는 점, 셰퍼드 실험을 통해 차원의 세계를 들락거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편과 2편에서 늘어놓은 괴수의 등장을 관객들에게 슬쩍 이해시키려는 노력 등은 너무나 억지스럽다. 마지막으로 중국 자본의 역할이 지나치게 눈에 띈다는 사실도 큰 흠이다. 대배우 장쯔이의 극중 역할이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은 그러한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다만 대책 없이 늘어놓은 1편과 2편의 실타래를 주워 담기 위해 관객들을 열심히 설득시키는 중이다. 뉴욕의 한 복판에서 조그만 밀실로, 조그만 밀실에서 우주정거장으로 무대 배경을 급진적으로 전환시키며 하나의 사건을 억지로 짜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기서 ‘패러독스(Paradox)’의 의미에 대해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패러독스’는 한글로 풀이하자면 ‘역설(逆說)’이다. 그럼 ‘역설’은 또 무엇인가? ‘역설’은 겉으로 보기에 모순되고 부조리하지만 표면적인 진술을 떠나 근거가 확실하든지, 또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한 문장 안에 상반된 두 가지의 말이 공존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자가 학생백과 사전을 찾아보니 쉬운 예로 ‘찬란한 슬픔’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슬프다는 건 우울하고 음침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를 ‘찬란하다’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건 모순이라는 얘기이다. 이처럼 ‘역설’은 일반적으로 서로 반대 개념을 가진, 혹은 적어도 한 문맥 안에서 함께 사용될 수 없는 말들을 결합시키는 모순 어법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찾아낸 영화 속 패러독스는 에이바 해밀턴(구구 음바타로 분)의 모성애였다. 다차원의 공존 라인에 걸쳐진 대원들은 모순된 환경에서 각각의 목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중 에이바 해밀턴이 과거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귀환을 거부하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더라도 필자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당초 기획 단계부터 시리즈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억지스러운 스토리와 연출에 대해 혹평을 서슴지 않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독립된 스토리를 함께 가져다 붙이기로 결정하고 연결부분을 만들어 자연스레 조립하고 나니 필자의 눈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연결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은 재난영화, 밀실공포, SF의 형식으로 제각기 다르지만, 동일한 사건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필자의 생각에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는 1편과 2편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함께 프리퀄(Prequel)로서 제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된다.

영화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인 구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정된 공간, 제한적인 인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고 등은 신선한 연출 방식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커다란 전제가 되는 평행우주 또한 관객들에게 식상한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창 떠들썩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혹은 DC의 확장 유니버스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놓고 본다면 이 역시 평행 우주를 기반에 둔다. 이는 원작이 각자의 히어로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스토리 라인을 펼쳐 나가다보니 어느 순간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어 복잡하게 얽힌 구성을 풀기위한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관객들은 평행 우주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후 각종 영화에서 평행 우주를 소재로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 또한 평행 우주라는 개념을 소재로 가져왔는데 평행 우주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이미 많은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 온 평행 우주의 개념을 굳이 1편과 2편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가져온 점이 현재의 시점에서 관객들에게 익숙한 지루함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 더 비틀어 새로운 요소를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얘기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지난해 10번지에서 길을 잃었던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아직도 헤매고 있는 걸까? 3편을 종착역으로 정해두었다면 필자는 과감히 J.J. 에이브람스의 떡밥에 무릎을 꿇고 믿음이 깨져버렸다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클로버필드 오버로드’라는 떡밥을 던지고 있다. 과연 깨진 믿음을 이어줄 마지막 퍼즐 조각이 나타날 수 있을까? 어쩌면 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떡밥을 물고 한껏 요동을 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