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토글
vol.124
2018년 07월호
SPECIAL
한국재료연구원 행사사진

지난 호 웹진 보기

전체 기사 검색

KIMS SALON

이 더운 여름, 살랑살랑 거리는 바람에 한껏 취해... 바람바람바람(2017)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사업화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섬인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도는 과거부터 척박한 땅이었다고 한다. 돌이 많고 흙이 거칠어 곡식이 잘 자라기 쉽지 않았고, 바람 또한 거세게 불어 어업도 생각만큼 풍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힘겹게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 해녀 활동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돌’과 ‘여자’와 ‘바람’이 많다고 해서 제주도는 흔히 알고 있듯이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린다. 하지만 지금의 제주도는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 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 지질공원 인증 등 유네스코가 인정한 아름다운 섬에 속한다.

 필자는 얼마 전 이 아름다운 섬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의 주된 내용이 천혜의 환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름다운 관광명소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영화 자체로서의 재미는 아마도 반감되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감독은 앞에서 언급한 ‘삼다도(三多島)’라는 별칭에 주목한 듯하다. ‘돌’과 ‘여자’와 ‘바람’, 과연 영화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맛깔나게 풀어 나갔을까? 오늘은 진지하게 바라보면 다소 무거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그 무게를 제법 가볍게 풀어낸 제주도의 한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 ‘스물(2014)’로 색다른 청춘들의 고민을 리얼하게 보여준 이병헌 감독이 제대로 된 성인판 ‘스물’을 들고 왔다.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이다.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를 바라보는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관객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쉽게 이해했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놓인 환경 속에서 배우자 몰래 외도를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짝 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왜 제목이 ‘바람’도 아니고, ‘바람바람’도 아니고, ‘바람바람바람’이라고 세 번씩이나 크게 외치고 있냐하면, 아주 애매하게 얽혀 있는 세 쌍의 남녀가 제각기 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에서 이 영화를 굳이 미화하자면, 영화는 ‘바람’이라는 단어처럼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그리고 그 거센 바람에 흔들리다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잠시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물리적인 바람 외에도 ‘외도’를 의미하는 바람의 어긋남도 포함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마무리는 주인공 봉수(신하균 분)와 석근(이성민 분)의 롤러코스터 장면으로 장식한다. 이병헌 감독은 감정의 굴곡선,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롤러코스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고 싶었을까? 아니, 오히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속도와 강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거라고 해석하는 게 좋겠다. 어쩌면 봉수와 석근이 겪는 바람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끼게 되는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의 강렬함과 다를 바 없음을 외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석근’은 오랜 시간동안 아내인 담덕(장영남 분) 몰래 바람을 피우며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그 과정에 매제인 봉수까지 끌어들이는데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사실 끌어들인 다기 보다는 자신의 외도를 합리화하려는 도구로 그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와 반대로 ‘봉수’는 올곧은 인물의 표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냉철하고 곧은 심성일지라도 속으로는 외면적인 윤리관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불만은 아내인 성임(송지효 분)과의 대립에서 나타나는데 그건 그녀가 그의 존재 또는 위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나거나 강한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자신이 무기력해짐을 견디지 못하고 속으로 앓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 내면적 불만이 제니(이엘 분)라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휘청거리고 넘어가 버린 것이다.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는 알고 보면,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짝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단순히 관객들에게 일러바치고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모두 마음속에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렇게 스쳐가는 바람 이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병헌 감독은 영화를 통해 대부분의 중년들이 부닥치고 있는 난제, “왜 어른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도 항상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좀 더 구체화시키며 관객들에게 반문하고 있다. 물론 그 질문이 누구도 찾지 못하고 한동안 풀리지도 않는 난제로 남아있는 건 여전하고 말이다.

 이는 담덕이 사고를 당한 후, 석근이 마음을 정착시킬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이와 동시에 봉수의 익숙지 않은 외도를 감싸려 하는 그의 행동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결국 자신처럼 제자리를 잃지 말고 돌아갈 곳을 간직하고 있으라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봉수 또한 제니와의 외도 이후 긍정적이고 당당해진 표현과 행동적 변화 덕분에 아내와의 사이가 다시 좋아졌고, 그 때문에 제니와 거리를 두면서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을 거부하려하는 것에서도 같은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제니가 자신이 과거로부터 받은 상처를 봉수를 통해 치유하려 한다는 측면 또한 이와 같다.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등장인물 간의 서사 구조를 벗어나 감독의 스타일을 살펴보면,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코 웃음코드 하나에 국한시키고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이병헌 감독의 대표작인 ‘스물(2014)’에서 보여준 웃음코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인생관을 곳곳에 숨겨놓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그가 지난 2016년 특별출연한 다른 감독의 작품 하나를 연관 지어 함께 풀어봤으면 한다. 이병헌 감독이 정말 리얼한 건달로 특별출연했던 남대중 감독의 영화 ‘위대한 소원(2016)’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생역작으로 꼽는 몇 안 되는 코믹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생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의 해석을 기발한 스토리로 풀어놓는 가운데, 웃음코드는 정말 최고의 강세를 집어넣었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소 어색한 주제를 가지고 큭큭 웃는 새침한 웃음이 아닌 푸하하 또는 깔깔깔 정도는 쉽게 나올 만큼 정말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웃음코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대사와 스토리, 배우의 연기력 등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말 그대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와 연계해 이병헌 감독의 전작인 ‘스물(2014)’의 경우, ‘위대한 소원(2016)’만큼 강렬한 웃음을 끌어내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정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우정을 해석하는 측면에서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를 내세우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2001)’와는 또 다른 시각이다. 우정을 ‘의리’로 해석하지 않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동지애’ 또는 ‘함께 걸어가는 이’로 영상에 담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방송인 김제동 씨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친구’란 ‘나의 아픔을 어깨에 짊어 메고 가는 이’로 해석했지만, 영화 ‘스물(2014)’은 ‘친구’를 ‘나의 아픔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가슴으로 끌어안고 가는 이’로 확대 해석했다.

영화 ‘스물(2014)’과 ‘위대한 소원(2016)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필자가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을 얘기하면서 ‘스물(2014)’과 ‘위대한 소원(2016)’을 함께 언급한 이유는 이 영화들의 키워드가 다소 일치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의 키워드는 ‘청춘’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청춘(靑春)’은 단순히 나이로 구분 짓는 ‘청춘’과는 다른 개념이다. 젊은 시절, 인생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고민과 방황에 빠지면서 뚜렷한 목적 없이 내 곁에 함께 하는 ‘친구’란 존재는 나와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고민을 함께 하는 이들이란 거다. 영화 ‘세 얼간이(2009)’의 친구들이 주인공 란초(아미르 칸 분)의 조언 속에 한층 성장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우열의 세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우고 깨닫는 존재라는 점에서 감독이 영화를 통해 표출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적잖은 흔적을 남긴다. 해석하는 차이에서 유사한 ‘청춘’을 묘사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와는 또 다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은 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중년기에 접어든 관객들에게 전하는 이병헌 감독의 또 다른 메시지이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흔들열차 탑승에서 보다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튼튼한 밧줄이 되어주는 영화,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 중년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될 수 있다. 영화 ‘위대한 소원(2016)’이 ‘철없는 우정’을, 영화 ‘스물(2014)’이 ‘함께 고민하고 부딪히는 우정’을 보여줬다면,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갈망하는 어른들을 위한 우정’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할까.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최근 개봉한 영화 ‘인랑(2018)’과 같이 우리나라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메이저 영화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영화의 재미와 감동이 예산과 제작 규모 등과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실험을 즐기는 독립 영화처럼 작은 영화 속에서 보다 힘 있고 생기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에게 있어서 삶의 색깔을 짙게 표현해줬던 영화들은 작은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록 사람들에게 추천한 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배우 안재홍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던 우문기 감독의 영화 ‘족구왕(2013)’도 이에 속한다.

 영화 ‘바람바람바람(2017)’ 또한 메이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영화보다도 배우들의 감정을 잘 조절하며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중년들의 속내를 사람 내음으로 가득히 채워 풀어냈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이 영화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 모으는데 충분히 성공했다고 얘기하고 싶다. 누구나 주저하며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거나 겪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 네 삶을 가장 리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폭염에 찌든 여름, 한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취해 곁눈질을 연신 해대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기회에 아름다운 제주도의 밤바람을 한껏 맞이하고 오시길 강력히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