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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0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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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손짓... 국가 부도의 날(2018)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사업화실)

 ‘영화’의 매력은 어떤 내용을 다루든지 간에 그 내용을 현실감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다. 여기서 ‘현실감’이란 관객들이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가장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우의 대사와 연기, 구성 요소 등을 주제와 잘 버무려 실제에 가깝도록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현실감’의 설명이 이와 같다면, 관객들이 공상과학(SF)이나 스릴러, 호러물 등 개인이 접하기 쉽지 않은 독특한 주제를 만났을 때, 그 만큼 영화의 매력을 보다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관객들이 이미 경험하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본인의 얘기를 영화로 표현한다면 그 영화의 매력은 어떻게 다가오게 될까? 식상한 내용과 표현으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혹은 익숙한 감정으로 보다 친근한 감동을 선사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관객들은 영화를 접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새롭고 신비스러운 내용에만 반응을 보이게 될까?

 논픽션 영화의 강점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데 존재한다. 그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익숙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고 그 기능이 다양하다고 하겠다. 오늘은 다수의 관객들이 직접 겪은 바 있는 재난 사건을 다룬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겪었던 일인 만큼 다시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악몽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심하면 할수록 또다시 닥쳐올 수 있는 공포라는 점에서, 영화를 통해 이를 되새기고 체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제작 방향과 목적이 전혀 어색하지만은 않은 영화,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은 지난 2016년 영화 스플릿(2016)으로 나름의 매니아 층을 형성시키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최국희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다. 아마도 최국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997년부터 시작된 IMF 시절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지간한 중년들은 IMF 사태를 떠올리며 당시 상황을 추억삼아 과거를 회상할 수 있고,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이들은 당시 상황을 화면의 생동감과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는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최국희 감독은 프레임 속에서 IMF 사태를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 활약상을 카메라에 담아내고자 했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영화는 당시의 IMF 사태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담아내기 위해 3명의 배우와 3개의 역할을 설정하고 공평하게 공간을 배분했다. 다시 말해, 유달리 드러나는 한시현(김혜수 분)이라는 인물 한 명에게만 무거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진 않았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성이 영화의 제작 목적 달성에 어떤 도움이 됐을까? 지금부터 그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한다.

 1997년의 IMF 사태를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미시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일련의 사건, 예를 들어 하나의 기업 또는 한 명의 인물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기업 또는 개인이 흔들리는 스토리를 그려나가다가 결국 부도에 다다르는 것, 알고 보니 이게 국가적 차원에서의 IMF 사건의 간접적 영향이었고, 이로 인한 희생양이 되어버렸다고 설명하는 방법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흔한 방식으로서, 개인을 중심으로 스토리의 재미를 가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사건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해석에 대한 다소의 아쉬움이 존재하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이와는 달리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아예 IMF 사태 전체를 관객들에게 설명시키기 위해 각각의 역할을 배분하고 발생 순서대로 사회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배우들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스토리를 설명하는 역사물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 케이스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방식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항상 얘기하지만 2시간 남짓의 짧은 러닝 타임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하면 세세한 부분을 놓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부도를 막으려는 자’, ‘부도를 이용하는 기회주의자’, ‘부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자’, 이렇게 3명 모두를 한꺼번에 화면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이 세 역할 모두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거나 스토리를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억지스럽게 엮으려 하는 흔적이 보였던 경우가 갑수(허준호 분)가 시현을 찾아가 대출을 도와달라고 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직장으로 갑작스레 찾아온 갑수를 바라보며 당황한 시현이 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필자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어처구니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배우 김혜수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출중했다. 30여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서도 묻어나듯이 그녀의 대사와 표현력은 스크린 곳곳에서 여유를 뿜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씬(scene)에서 보이는 지나친 감정 과잉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국가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히어로(?)를 자처한 건 스토리를 풀어내고 역할을 살리기 위한 당연한 절차였겠지만, 지나친 감정 유입은 연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대교 위 꽉 막힌 교통체증 속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든가, 자동차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못 이기고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 등은 당시의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연출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겠다. 배우 유아인의 연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윤정학(유아인 분)이 무너져 내린 옛 직장 고려종금의 현장에서 솟구친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오렌지(류덕환 분)의 뺨을 거침없이 때리는 장면과 자신이 구매한 집을 둘러보던 도중 어느 방에서 목을 매단 시체를 마주하고 냉정한 말을 내뱉는 장면 등은 감정 과잉이 지나치게 돌출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반면에 배우 허준호의 연기는 오랜 기간 다양한 역할로 쌓아온 연기 내공 덕분인지, 앞의 두 역할보다 훨씬 절제되고 자연스러웠다. 배우의 연기를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받아들여야만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달리 보면 그의 연기는 당시 IMF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자영업자의 역할을 대표하는 만큼이나, 지나치거나 부족함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고 생각된다. 사건을 확대시켜나가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은 극의 재미를 위해 억지로 넣은 역할이겠지만, 사실 좀 과했다. 개인적으로 배우의 연기가 스토리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은 확실히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역할을 염두에 뒀다는 점과 이야기 전개를 위한 불가피한 악역 설정이라는 점에서 그 당위성이 인정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기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영화 블랙스완(2010)과 영화 제이슨본(2016)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매우 익숙한 배우 뱅상 카셀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지만 역시나 실망도 컸다. 그의 등장 직후 이재한 감독의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이 떠오른 건 지나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에서 배우 리암 니슨의 출연과 역할에 아쉬움이 묻어났던 것만큼이나 이 영화 속에서도 배우 뱅상 카셀의 네임 밸류에 걸맞을 정도의 역할과 화면의 할애가 충분했어야 했다. 그 이유가 혹시나 출연료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건 당연한 사실이고 말이다. 영화의 전체 분량을 놓고 봤을 때 차라리 IMF 협상 과정에 비중을 두고 좀 더 세밀한 과정을 묘사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IMF 총재와 시현이 가입 조항을 두고 이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공방전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뛰어난 매력을 선보이는 뱅상 카셀과 강한 인상을 남기는 김혜수 사이의 역할과 공간을 좀 더 스펙터클하게 배열했더라면 지루한 감이 조금 있었을지라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현실감은 보다 뛰어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각각의 역할을 벗어나 전체적인 방향만을 놓고 본다면 영화의 시도는 좋았다. IMF는 우리 국민들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향수이다. 비록 모두의 기억 속에 최악의 재난상황으로 남아있는 아쉬운 추억이지만, 그만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여기에 재미를 가하는 작업만으로도 꽤 괜찮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요소들을 재밌고 맛있게 버무렸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스토리 리더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수의 연기는 오래된 연륜만큼이나 제대로 된 색깔을 펼쳤다. IMF 국면에 접어드는 국가를 살리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다양한 각도에서 상당한 열기를 뿜어낸다. IMF 총재를 앞에 두고 논리적인 주장과 함께 눈빛 싸움을 펼치는 장면은 관객들이 그 긴장감에 몰입될 정도로 나름의 박진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담으려 했던 건 무리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철저하게 정부의 입장에서 시각을 펼치던가, 혹은 지극히 서민적인 관점에서 IMF 사태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치열함을 보여주던가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회를 역이용하려는 윤정학의 역할은 사실 스토리 속에서 감초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주된 스토리 리더로서의 무게를 짊어질 정도는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현 혹은 한갑수의 입장에서 IMF 사태를 온몸으로 두들겨 맞는 케이스를 충분히 제시했더라면 영화가 일관성 있게 흘러가면서도 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뱉어본다. 부가적인 양념이 되어주는 재미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관객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아쉽게도 영화는 잦은 장면 전환만큼이나 이랬다저랬다 우왕좌왕한다. 이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으니 작은 그릇에 너무 많은 음식을 담고자 했다. 여기에 조금 전 언급한 감초까지 적절한 반찬으로 곁들이니 관객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 어떤 주제보다도 무겁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장면마다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선의 폭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영화를 결코 가볍게 지나쳐버리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과거의 암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어 국민들의 울분을 건드리고 있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 영화가 마지막에 남긴 또 하나의 경고가 관객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