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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1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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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기획하고 설계된 그의 메시지... 글래스(2018)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사업화실)

 책이나 영화 등에서 흔히 ‘3부작’을 일컫는 ‘트릴로지(Trilogy)’라는 단어는, 달리 살펴보면 재미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어에서는 ‘트릴로지(Trilogie)’로 표현되며, 이 뜻은 ‘비극의 3부작’, 또는 ‘(밀접하게 연관된)셋, 3요소, 3인조’라는 의미가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와 조금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 보인다. 필자는 ‘비극’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된’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는데, 이를 조합해 해석해보면 결국 ‘트릴로지’는 ‘제각기 나뉜 3가지 이야기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흘러가는 하나의 비극’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 반드시 그 의미가 그러하기 보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런 의미를 담은 내용이 꽤 있는 정도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

 오늘의 영화는 어쩌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평단과 관객들의 평가는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감독의 연출 방향을 읽으려는 ‘해석에서의 차이’와 스토리 이해를 위한 ‘미장센들의 연결고리 찾기’에서 조금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찾아보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게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의 특이점은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애초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으나, 마무리하기까지의 시간이 꽤 걸렸다는 점이다. 감독의 의도인건지 혹은 영화계가 가진 현실적인 장벽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건 이 덕분에 관객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영화의 재미와 얘기할 거리들이 좀 더 늘어난 건 사실이다. 영화 식스센스(1999)로 반전영화의 매력을 크게 선사했지만, 영화 해프닝(2008)을 통해 당혹감과 실망감도 동시에 안겨준 바 있는 괴짜 감독,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글래스(2018)’를 소개한다.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이 영화 글래스(2018)는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1편인 언브레이커블(2000)과 2편인 23아이덴티티(2016)에 이은 3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영화와 맥락을 함께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의 구성이 이어질 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은 크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세 편을 모두 접하지 않고 하나씩 선택하여 관람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오늘 얘기를 나눌 3번째 영화 글래스(2018)를 통해 전체 ‘트릴로지’의 맥락을 살펴보려면, 앞의 두 편을 접하지 않고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2000년에 제작된 언브레이커블(2000)은 평범한 인물이었던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 분)이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각성하게 되기까지의 내용을 그렸고, 2016년에 제작된 23아이덴티티(2016)는 23개의 인격을 가진 해리성 인격장애자 케빈 웬델 크럼(제임스 맥어보이 분)이 각기 다른 인격들의 충돌 사이에서 24번째 인격인 일명 ‘비스트’를 창조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영화 글래스(2018)는 주인공인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L.잭슨 분)의 등장과 역할을 조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지난 20여 년간 기획하고 창조해낸 ‘히어로’와 ‘빌런’의 존재를 세상에 어떻게 극적으로 노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그의 설계와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앞의 두 편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이러한 맥락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제대로 얘기하려면 앞의 두 영화를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은 풋볼 스타디움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남자 데이빗 던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학 시절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그는 어느 날 교통사고를 겪고 난 후 그 두려움으로 풋볼을 그만두고 경비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갑자기 겪게 된 열차사고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되면서 시작한다. 어쩌면 천운이 따랐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이 사고의 결과에 의문을 품은 이가 있었다. 3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인 미스터 글래스(엘리야 프라이스, 사무엘 L.잭슨)는 이렇게 일찌감치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선천적으로 골밀도가 낮아 사소한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불운아였다. 그 탓에 살아오면서 수십 번도 더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렇게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던 그가 히어로를 다룬 코믹스를 자주 접하면서 생각해낸 하나의 공식은, ‘자신처럼 약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보다 강한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라는 가정이었다. 여기서 아까의 열차사고로 돌아가 그는 유일한 생존자였던 데이빗 던이 그 공식에 들어맞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고 데이빗 던을 찾아가 이 공식을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로 봤을 때, 이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의 뒷이야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엄청난 힘을 자각하게 되면서 수많은 악당들을 무찌르는 히어로가 된다는, 뭐 그런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나 DCEU(DC확장유니버스)의 히어로 스토리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가 그런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히려 찻잔 속 잔잔한 파도마냥 주인공 데이빗 던을 조용한 찻잔 속에 가볍게 띄워놓았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샤말란 감독의 첫 번째 히어로 영화는 그가 가진 ‘힘’보다 오히려 그의 ‘심리적 변화’와 ‘정체성 찾기’에 초점을 맞춰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영화 왓치맨(2009)의 분위기와 스타일에 좀 더 가깝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두 번째 영화 23아이덴티티(2016)는 첫 번째 영화 언브레이커블(2016)과 연결되는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케빈 웬델 크럼은 23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해리성 인격장애자이다. 23개의 인격들이 한 공간 속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빛’을 가지는데, 이 ‘빛’을 소유한 인격만이 ‘케빈 웬델 크럼’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 23아이덴티티는 23개의 인격 중 일명 ‘패거리’라고 불리는 ‘데니스’와 ‘패트리샤’가 어린 인격인 ‘헤드윅’을 이용해 ‘빛’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24번째 인격인 ‘비스트’를 창조하려는 시도를 그려낸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여학생들이 납치되고 이들이 23개의 인격들로부터 탈출하려는 내용을 보여준다. 철저하게 스토리만을 놓고 본다면, 이들 두 영화는 서로 전혀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영화가 마무리된 후 쿠키 영상을 통해 데이빗 던의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반전과 허무로 관객들을 마구 농락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재치와 위트가 가득한 장면이기도 하다.

 세 번째 영화 글래스(2018)의 역할은 앞의 두 작품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편의 영화를 세 번째 영화를 통해 서로 이어주는데, 이는 스토리 자체를 넘어 두 영화의 주인공인 캐릭터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포함한다. 즉, 미스터 글래스는 히어로 ‘데이빗 던’과 빌런 ‘비스트’간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이들의 대결을 이벤트화해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등장시킬 것인가를 철저하게 고민하고 기획하는 인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익숙한 히어로 영화에서 표현되어지는 등장인물의 액션과 서스펜스에 치중하기보다 각각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지극히 심리 분석에 비중을 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를 좀 더 살펴보면, 약 129분의 짧은 러닝 타임 동안 앞서의 두 영화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속도는 대체로 빠른 편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위해 가끔씩 연출 측면에서 ‘쉼표’를 집어넣어 숨고르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앞에서 언급한 목적 때문인지 그러한 쉼표가 전혀 없다. 불필요한 장면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엘리야 프라이스의 기획력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여러 미장센들을 두어 관객을 농락하기 좋아하는 감독의 특징만큼이나 나름의 떡밥을 많이 던지는 편이다. 앞의 두 작품들을 이미 관람했던 관객일지라도 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빗 던과 비스트의 첫 만남이 꽤나 빨리 다가온 건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긴장감을 제공했다. 불필요한 장면을 최대한 배제한 채 관객들이 기대하는 히어로와 빌런의 첫 대결이었다는 점에서 기대보다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엘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 분)의 갑작스런 등장은 필자에게 조금은 낯설었다. 뭔가 다 알고 온 것 마냥 너무 뜬금없기도 했다. 준비된 장비와 준비된 멘트처럼 각자의 능력이 뭔지, 약점이 어떠한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다소 평범한 관객일지라도 이를 두고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애초부터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녀의 등장 이후부터 줄곧 그녀의 정체를 의심하고 스토리의 향방을 해석해야 하는 부담감을 제법 안고 간다.

영화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카메라 워킹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자주 뒤집어진다. 화면이 뒤집어진다는 건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관점 전환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 영화의 관점 전환은 조금은 다른 개념이다. 상황을 뒤집어보기 보다는 캐릭터의 숨은 내면을 읽어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쉬운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이는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에서 조셉 던(스펜서 트리트 클락 분)이 아버지 데이빗 던의 열차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와 무거운 바벨을 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어린 엘리야 프라이스가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코믹스의 상하를 뒤집는 장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 가진 캐릭터 자체의 ‘힘’보다 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엘리 스테이플 박사는 이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해둔 채 ‘당신들은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얘기한다. 겉으로 표현된 그들의 ‘힘’은 그저 우연의 일치에 기반을 둔 해석의 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들이 살아오면서 받았던 내면의 상처에 집중하라는 얘기인데, 결국 그들의 힘은 코믹스 속에서 발생한 망상의 산물이라는 얘기와도 같다.

 이 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와 연결된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건, 사람들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역할의 행위를 수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엘리야 프라이스는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악의 편에 서있는 빌런을 대변하고 있기 보다는, 데이빗 던과 비스트가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를 바라고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미스터 글래스를 통해 대변되는 이들의 역할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세상에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냄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결론적으로 영화 속 세 명의 역할을 통해 전달되는 감독의 메시지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는 것으로 귀결되며 결국 영화 속 세 명의 역할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러한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대결 장소로 오사카 타워를 선택한 것도 해당 목적 때문이었으며, 이러한 역할을 다했을 때 이들의 등장이 막을 내린 것 또한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 ‘23아이덴티티(2016)’, ‘글래스(2018)’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영화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세 영화의 포스터이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트릴로지는 각각의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세 명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배경은 제각기 금이 가고 있는 글래스를 통해 표현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갈라지고 있는 글래스의 금은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에서 23아이덴티티(2016)를 거쳐 마지막 영화 글래스(2018)에 이르기까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언브레이커블(2000)에서 시작된 미스터 글래스의 기획력이 점차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뜻하는 건지, 아니면 이들 세 캐릭터 모두 미스터 글래스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각각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면서 내가 그 동안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시각과 관점을, 이 영화와 이 캐릭터들의 존재와 역할을 통해 깨어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필자는 마지막 해석을 택할 것 같다.

 또 하나는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의 역할이다. 필자는 굳이 세 번째 영화를 위해 케이시를 다시금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데이빗 던의 아들은 왜 언급하지 않느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이들과는 다르다고 얘기할 것 같다. 데이빗 던과 그의 아들과의 관계는 케빈 웬델 크럼과 케이시의 관계와는 분명 다르다. 전자가 혈연으로 애틋한 정을 나눈 부자지간이라면, 후자는 철저하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감금 상황과 친구의 살해 사건 등을 온 몸으로 겪은 정상적인 피해자라면 누구나 가해자인 범인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대화를 시도하고 심지어 끌어안아주기까지 한다는 건 관객들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 꽤 부담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를 쉽게 전개시키기 위해 케빈 웬델 크럼의 인격 전환 속도를 빠르게 만든 것 또한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째 영화 23아이덴티티(2016)에서 23개의 인격 모두를 보여주지 않고 일부의 인격만을 드러낸 것은 패거리가 ‘빛’의 주도권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비춰진 건 영화의 속도를 천천히 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아의 표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배려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글래스(2018)에서 그의 인격을 너무 쉽게 변환시켜 버린 건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시키기 위한 감독의 지나친 욕심이 만들어낸 실수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영화 ‘글래스(2018)’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사실 세 편의 영화들 중 굳이 하나를 택해 리뷰를 하라면 필자는 두 번째 영화 23아이덴티티(2016)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았다.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이 미스터 글래스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의해 데이빗 던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만드는, 쉽게 말해 두 사람의 관계에 핵심적인 요소가 담겨 있었다면, 영화 23아이덴티티(2016)는 하나의 캐릭터이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수없이 많은 인격들이 각자가 놓인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리고 ‘빛’의 주도권이 어떻게 옮겨지는지, 마지막으로 ‘비스트’의 존재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에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어, 그 만큼 얘기할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두 영화가 전체 트릴로지의 관점에서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완성적인 부분이 강했다면, 영화 글래스(2018)는 불완전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강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관심이 큰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글래스(2018)가 전체 트릴로지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가장 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감독의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이다. 캐릭터와 그들의 역할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의식하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분명 이 트릴로지가 히어로물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지만, 이 작품들은 우리가 익숙한 히어로 스타일과는 분명 다른 점이 많다. 오히려 필자는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영화 왓치맨(2009)의 분위기가 두루 엿보인다고 말하고 싶은데, 히어로 자체가 가진 힘, 즉 사회적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영웅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히어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흐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색다른 주제와 매력을 가지고 있어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만 다양한 미장센과 반전 연출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재미를 즐기는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또 한 번의 재치에 나도 모르게 당한 건 아닌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저 해프닝으로 넘겨주길 조심스레 부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