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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2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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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코미디 사이의 숨은 균형 찾기... 고스트 버스터즈(1984)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 여름 무더위를 쫓기 위해 극장가를 메워주던 공포영화들은 유령과 귀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무리들에 대응해 결사 항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좀비를 다룬 영화들이 유행했던 것도 그렇고, 영화 그것(2017)이나 더넌(2018) 등의 공포물은 그러한 영화들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듯 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칼과 피가 난자한 일명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 정체 모를 인물이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내용을 담은 영화)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추세인 듯싶다. 영화 할로윈(2007)이 지난 2018년 새로이 리부트되기도 했거니와, 최근 2탄을 내세워 다시 인기몰이를 한 해피데스데이(2017)도 겉으로는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엔 날카로운 공포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을 주된 요소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공포를 넘어 좀 더 현실감을 채워줄 수 있다는 이유와 또 내 곁의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관객들의 불안감을 쉽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공포’는 어떻게든 재미를 전달하기 위한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달리 보면 ‘할로윈 데이’도 사람들의 공포 심리를 축제로 전환시켜 즐기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수십 년 전 이러한 공포를 재미로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제법 균형 잡힌 볼거리를 제공한 영화가 한 편 있었다. 필자와 같은 장년층에게 아직까지도 추억의 한 자락을 붙잡게 해준 그 작품, 오늘은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1984년 작, 고스트 버스터즈(1984)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는 그 세월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작품이다. 댄 애크로이드와 함께 영화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던 주인공 해롤드 래미스가 지난 2014년 이미 작고했을 정도이니 이 영화의 연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감이 올 것 같다. 그렇다고 벤허(1959)나 로마의 휴일(193)처럼 흑백의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니 초반부터 너무 김새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의 시점에서 젊은 층들에게 다소 생소한 작품이니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두고두고 꺼내어 봐도 질리지 않을 색다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제법 균형 있는 재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타이틀에서 드러내고 있는 바와 같이, 유령을 소탕하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자칭 초자연적 현상의 전문가들로 불리는 과학자이자 전직 대학교수들이 뉴욕의 버려진 소방서에 모여 갑자기 출몰하기 시작한 유령들을 소탕하는 우여곡절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제각기 다양한 개성을 갖춰 캐릭터적인 요소들을 두루 가지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닥터 레이몬드 스탠츠(댄 애크로이드 분)는 둥글고 서글서글한 외모를 갖추면서도 주변에 쉽게 이끌려 다니는 우유부단한 성격도 함께 보여주는 제법 아둔한 스타일을 드러낸다.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닥터 이곤 스펜글러(해롤드 래미스 분)는 냉철한 직관력으로 철저한 준비와 깔끔한 마무리 능력을 자랑하지만 엉뚱한 매지 또한 종종 선사하는 인물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투와 행동으로 사랑받는 역할을 맡은 팀의 리더 닥터 피터 벤크맨(빌 머레이 분)은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걸 넘어 이야기 자체를 만들어 내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의 사랑을 충분히 얻어낸다. 이 외에 루이스 튤리(릭 모라니스 분)와 제나인 멜니츠(애니 파츠 분) 또한 조연으로서 스토리텔링 요소를 충분히 포함한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초자연적 현상인 유령을 다루는 소재의 특성 상, 영화의 특수효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한 당시의 시각효과 기술은 하지만 제작 당시엔 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도서관 유령에서부터 후속 애니메이션 ‘유령 대소동’으로 이어져 인기몰이를 했던 먹깨비 유령, 맨해튼을 단맛으로 물들이는데 기여한 스테이 퍼프트 머시멜로우맨 등은 당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이들이 유령을 잡는데 사용했던 양성자 총과 뮤온 트랩, PKE계측기 등은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과학적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재미나게 엮었다.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가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영화적 상상력의 기술 수준을 대변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아쉽게도 1985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2, 마궁의 사원’에게 돌아갔지만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들은 캐릭터 상품과 애니메이션으로 시장 영역을 확대하면서 전 연령층에게 전달 가능한 이야기와 개성을 풍부하게 담게 됐다. 팀의 리더인 닥터 피터 벤크맨은 생뚱맞은 유머 감각과 예쁜 여자들만 보면 작업을 거는 사기꾼 기질까지 갖췄다. 존재감 측면에서 팀원들 중 최고의 개성을 자랑한다. 닥터 이곤 스펜글러는 기계 제작 기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이다. 팀의 리더는 피터 벤크맨이지만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둔다면 실질적인 리더는 이곤 스펜글러라고 봐도 무방하다. 닥터 레이몬드 스탠츠는 외모와 성격 모두 둥글고 서글서글한 성격의 캐릭터이다. 과학 지식도 해박한데다 성격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지만 그만큼 다소 엉뚱한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 동료들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다 무너져가는 폐 소방서를 비싼 가격에 계약해버리거나, 머릿속에 악령의 모습을 떠올리지 말라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거대 머시멜로우 유령을 떠올려 현실에 등장하게 만들어 버리는 등 조금은 허점투성이의 귀여운 모습까지 함께 보여준다. 굳이 뒤늦게 합류한 나머지 멤버 윈스턴 제드모어(어니 허드슨 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3명의 캐릭터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개성 강한 등장인물로 구성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간다.

 영화의 OST는 영화를 감칠맛 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불렀던 이 영화의 메인 테마송은 1984년 빌보드 차트 100에서 3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그 유명세가 상당했다. 물론 휴이 루이스의 ‘I want new drug’를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이 곡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흥행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리듬과 반복적인 음률, 그리고 가사의 전달력은 유행을 이끌어내는 자체적인 능력이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필자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초자연적 현상인 유령을 다루는 공포물을 재미로 승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연출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 점이다. ‘공포’와 ‘코미디’라는 두 가지 장르는 그 특성을 살펴보면 쉽게 공존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공포’는 스토리텔링 요소와 배경적 지식 전달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시각’와 ‘청각’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일단 공포 환경이 조성되고나면 그 분위기를 방해하는 다른 요소들의 투입이나 간섭을 묵인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한다. 등장인물의 대사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리고 과장된 액션 등으로 대표되는 슬랩스틱(slapstick) 등 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그 결과로 웃음을 이끌어내고 그 분위기를 쉽게 반전시키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포’와는 그 접근방식이 전혀 반대라고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장르의 결합은 다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는 두 가지 장르의 적절한 균형과 배합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포와 재미를 모두 안겨주는데 성공했다. 등장인물의 구성과 대사, 액션 등을 통해 재미를 유발시키면서도 뉴욕시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유령 출몰 배경과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전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이는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균형 있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점이라고 하겠다.

 둘째는, 초자연적 현상인 유령을 대하는 과학적 접근방식이다. 1980년대까지 유령과 귀신 등을 다룬 공포물들을 살펴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에 가까운 한(恨)이나 복수심에 빠진 유령과 귀신 등의 횡포에 등장인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들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대응 방식이 영화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폴터가이스트(1982)와 같이 종교적 힘을 빌리거나 초심리학에 기반을 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를 살펴본다면 이 영화는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인 접근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유령을 영적인 측면에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기 보다는 냉철하게 하나의 현실적 존재로서 인정하고, 이들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현세에 물의를 일으키는 영적인 존재를 앞에서 언급한 양성자 총, 뮤온 트랩, PKE계측기 등 과학적 지식의 산물로서 해결하려는 방식은 당시의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제공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이러한 여러 특징들을 통해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영역의 확대 가능성을 인정받아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실제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약 2억3천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임으로써 1편의 성공은 곧 후속작인 2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4천5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2편은 1억1천만 달러의 수익에 그쳐 아쉽게도 그 흥행세를 3편의 제작으로까지 이어가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6년, 폴 페이그 감독이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등 여성 멤버들로 구성된 리부트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아들인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이 기존 스토리를 이어갈 새로운 3편을 제작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어, 이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흥미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유년 시절에 접했던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1984)는 필자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명화에 속한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아도 전혀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살인과 범죄를 다루는 스플래터(splatter) 무비, 충격적인 공포와 전율에 기반을 둔 호러(horror) 무비는 물론, 오싹한 기운과 음산한 소리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존 공포물의 식상함, 그리고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흘려버리는 유머 코드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분명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 자격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건 세월의 때 묻음에 상관없이 그 매력이 진한 향수처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때로는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가벼운 손짓으로, 색다른 히어로들의 엉뚱한 매력에 빠져들고 싶다면 지금 당장 1984년의 옛 추억을 다시 한 번 소환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