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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5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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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엉뚱하고 답답한 삶이 진정한 삶... 어 퍼펙트 데이(2016)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실)

 지인이 영화 한 편을 소개하며 내게 말했다. 사건이 뒤죽박죽 얽혀 엉뚱하게 흘러가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사건 해결의 방향이 제법 틀을 잡고 있어 꽤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말이다. 당시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난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이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의 말에 전반적으로 동감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지금은 관객들에게 꽤 익숙해진 여러 배우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구성원들의 시너지 효과를 쉽게 기대하지만, 각각의 색깔이 너무나 달라 서로 섞이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배우들에게 그 공을 돌리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각본에도 수차례 손을 대어본 바 있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002년 ‘햇빛 찬란한 월요일’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황금조개상을, 본 영화로 2016년 고야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출신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의 ‘어 퍼펙트 데이(2016)’를 소개한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보스니아 내전은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보스니아계(이슬람교), 세르비아계(세르비아 정교), 크로아티아계(가톨릭) 사이의 오랜 민족적, 종교적 반목이 불러온 참사이다. 1995년 미국의 데이튼에서 평화협상이 체결될 때까지 20만 명 이상의 희생자와 약 230만 명의 난민을 초래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전쟁 후유증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느 마을에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 속에 시체 한 구가 빠지게 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물의 오염을 막고자 투입되는 NGO 구호단체요원 맘브루(베니치오 델 토로 분)와 B(팀 로빈스 분)의 좌충우돌하는 하루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처음에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의 등장이 이 영화의 색깔에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보스니아 내전은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전쟁터이고 베니치오 델 토로의 대표작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카리오 시리즈(암살자의 도시, 2015/ 데이 오브 솔다도, 2018)’이기 때문이다. 전작의 화면 속 모든 공간이 전장(戰場)의 긴장감을 대변해주고 있고 그 속에서 차가운 두뇌 싸움과 화려한 총격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구호활동을 펼치는 그의 모습이 꽤 신선한 역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와는 좀 다른 색깔을 가진 배우 팀 로빈스의 등장이 과연 두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섞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염려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기에 오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제각기 특유의 자기 색깔로 화려함을 뽐내는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 적절한 조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뛰어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떠올리면 관객들의 기대치는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 리더(Story Leader)로서의 이들의 역할은 적어도 필자의 시선에서는 적절한 캐스팅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니치오 델 토로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에서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 분)와 비교해 쉽게 눈빛이 흔들리는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 분)와 환상의 호흡을 비췄을 정도로, 복수에 대한 냉철한 숨겨진 이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의 차가운 눈빛처럼 말이다. 반면 팀 로빈스는 다들 아시다시피 처절한 사투를 이겨낸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그의 이름은 대표작 ‘쇼생크 탈출(1994)’의 그늘에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필자는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두 사람의 역할에 전혀 의문을 달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의 초반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점차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영화는 어떤 일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될지에 대해 쉽게 갈피를 잡기 힘든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전장(戰場) 속에서 벌어지는 구호행위를 보여주고 있는데, 무언가 일이 발생할거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배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에 대한 미적거림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관객들의 끈끈한 긴장감을 이어나가기 위한 미장센으로 해석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머피의 법칙’이 따로 없듯이 계속해서 이리저리 꼬여버리는 사건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필자가 기대했던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와 ‘팀 로빈스’의 적절한 조화를 방해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필자는 ‘풍요속의 빈곤’이라 부르고 싶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노력했지만,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다가 또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되어버리는 그런 엉뚱한 이야기. 캐릭터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그들이 모여 나름의 개성을 뽐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전체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을 맴도는 듯한 진한 아쉬움이 남는 그런 영화. 바로 이런 수식어와 설명이 적절한 영화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필자의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친 건 분명 아니다. 스토리텔링 과정이 뚜렷하기 보다는 무언가 계속 질질 끌어내려 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면서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보였을 뿐, 그 과정에서 관객과 소통하고자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글의 서두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배우들의 연기보다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낸다고 애기했던 바로 그 이유이다. 필자가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를 몇 가지 더 들어보자.

 이 영화에는 감독 특유의 미장센(mise-en scene)이 풍부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머피의 법칙’과 같이 뭔가 계속해서 꼬여버리는 사건들을 뒤로 하고 ‘비만 내리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B의 말이 입에서 떼기가 무섭게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는 장면을 얘기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내리는 ‘비’는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데, 오랜 전쟁으로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씻어주는 역할, 요원들의 24시간 동안 고생한 노고를 씻어주는 역할, 전쟁 후유증에 지쳐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의 슬픔을 대표하는 눈물, 마지막으로 우물 속에서 시체를 끌어 올려주는 표면적인 우연한 도움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화면 속 사건과 사물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관객들의 감정적인 측면을 상승시키려 노력하기도 한다. 사건 하나하나가 긴장감을 뿜어내는데, 배경이 전쟁터라는 이유 때문도 있겠지만 이를 테면 도로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소의 시체’, 니콜라(엘다 로지도빅 분)의 ‘공’, 니콜라에게 건네 준 맘브루의 숨겨놓은 ‘비상금’ 등이 그러한 것들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요소 때문에 이 영화를 찬찬히 살펴보면, 갈수록 꼬여만 가는 사건들과 무대 위에 놓여있는 캐릭터의 개성과 역할 하나하나가 마치 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화면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을 들 수 있다. 총을 들고 다니는 소년들이 공을 뺏어가는 모습은 전쟁 참사가 남긴 어두운 후유증이다. 아직까지 잔류하고 있는 UN군들의 모습과 행위는 긴장감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요소가 된다. 또한 도로 위 ‘소의 시체’ 어딘가에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지뢰의 존재’ 역시 관객들에게 상당한 긴장감을 던져준다. 밧줄을 구하기 위해 우연히 일행에 합류시킨 니콜라의 집에서 알게 된 니콜라 가족의 비밀과 도시의 참상이 보여주는 전쟁의 비극 등 굳이 사건의 발단이 되는 우물 속 시체를 언급하지 않아도 화면 곳곳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허투루 준비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마지막으로 ‘베니치오 델 토로’와 ‘팀 로빈스’의 구성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투입한 균형적 구성원들을 언급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자의 사견으로는 두 사람의 역할에 대한 캐스팅은 결과적으로 분명 적절하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감독은 이 구성의 완성도를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을 두게 만들고 각각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역할에 알맞은 조연을 투입했다. 바로 카티야(올가 쿠릴렌코 분)와 다미르(페자 스투칸 분)이다. 물론 소피(멜라니 티에리 분)와 니콜라도 사건을 이끌고 가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앞서의 두 사람이 가진 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데 이들이 어울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 종일 답답한 사건들만 발생하는데 비해 영화의 타이틀인 ‘어 퍼펙트 데이(A Perfect Day)’는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완벽함’을 드러내고 있다. 감독 특유의 위트(wit)가 드러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답답하고 속이 터지는 상황이지만 결국 모든 상황들이 웃음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그런 하루, 어쩌면 진정으로 탁월한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귀에 간간이 들려오는 흥이 넘치는 OST 또한 이러한 타이틀에 참으로 어울릴만한 리듬을 들려준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2016)’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은 단순히 스크린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대변하려 했던 게 아닌 듯하다. 만약 그런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총알과 피가 난무한 제대로 된 전쟁영화를 찍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전쟁의 참혹한 후유증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이들이 하루 동안 겪는 우여곡절의 꼬여가는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진한 모습을 드러내려 애썼다. 힘들고 어처구니없는 삶이지만 그 속에 웃음이 존재하고 복잡했던 일들이 단순한 해결책으로 풀어져가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사건들을 화면 속에 담았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허탈한 웃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이러한 것이라는 해답(解答)을 보여준다. 혹시 이것이 정답(正答)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삶을 헤쳐 나가는 해답(解答)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명제를 던져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