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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6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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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고자 하는 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실)

 의외로 주변에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영화와 유사한 설정을 가진 소설 또한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역사(歷史)는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기록’을 나타낸다는 의미만으로도 그 무게가 상당하다. 말 그대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사실을 나타내는 만큼,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수학 과정에서 국사 과목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되짚어 살펴보는 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좋은 공부가 된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깊은 상처,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초반부터 비틀어 짜내는 영화이다. 필자의 생각에 영화의 시작부터 관객들의 감정을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어 최고의 찬사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체 역사(alternative history)를 다룬 소설가 복거일의 1987년 작품, ‘비명을 찾아서’와 유사한 설정으로 한때 논란을 불러왔던 그 영화, 이시명 감독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를 소개한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이 사건 이후 동아시아 일대는 일본이 이끄는 ‘대동아 공영권’으로 재통합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은 사라지고 ‘후레이센진’으로 불리는 독립을 요구하는 레지스탕스만이 존재하는 암울한 시대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이러한 시대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1909년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암살미수사건, 저격수 안중근 현장에서 사살. 1910년 조선합병, 이토 히로부미 초대총독 위임. 1919년 파고다공원 불법집회 무산. 1932년 상해 홍구공원, 윤봉길 현장에서 사살. 1936년 미일연합군 2차대전 참정. 1945년 베를린 원폭 투하. 1965년 사쿠라 1호 위성 발사. 여기에 더해 1988년 나고야 올림픽이 개최되고, 2002년은 일본 월드컵이 개최되는 뒤바뀐 역사 말이다.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웃고 있는 이동국 선수의 사진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든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보기에 참으로 기가 막힌 영화의 설정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전율과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극의 초반에 강렬한 악센트를 준 관계로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들이 이에 익숙해져 버리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설정과 액션, OST와 구성, 연출까지 모든 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충분히 전해주는 영화라는 필자의 의견은 변함이 없다. 이는 영화의 제작 시기가 적절히 맞아 떨어진 것도 도움이 됐다. 지금에 와서야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맞아 어지간한 스펙터클에도 꿈쩍하지 않는 관객들이지만, 당시에는 영화 쉬리(1999)의 투박한 화면에도 감탄사를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영화가 개봉된 2002년은 FIFA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해로 보이지 않는 양국의 경쟁의식이 최고조로 치닫는 해이기도 했다. 당연히 관객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말이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러분들이라면 과연 ‘만약’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역사를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뒤집겠는가? 이 영화는 단순히 ‘만약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다면?’을 전제로 물음을 던지고 있지만, 이 ‘만약’이라는 단어는 결과의 반전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는 분명 ‘잘못된 역사’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는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이자 현실이기에, 이 역사를 뒤집고자 하는 이웃나라의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고 바로잡고 있다 하겠다. 이것이 영화의 주제이자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여기서 영화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해볼 수 있다.

 첫째는 영화의 내용 상 판타지 요소를 듬뿍 넣어 신선함을 가미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영고대’와 ‘월령’이라는 타임슬립 매개체를 이용해 타임라인을 형성하는 설명은 당시 유행했던 판타지 요소로 관객들에게 나름의 신선함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는 오히려 현실성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영고대’와 ‘월령’을 이용해 과거로 가는 과정과 장면이 어설프고 어색함은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이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기위해 어쩔 수 없이 삽입된 장면이긴 했지만, 연출 측면에서 좀 더 재미를 이끌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는 이런 매개체 등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너무 지나친 애국심을 자극하려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좋았을 듯싶다.

 둘째는 스토리 설정과 내용의 참신함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만약’이라는 전제로 살아있는 역사를 뒤집는다는 설정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선사했다. 그 역사가 우리에게 꽤 아픈 현실을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참신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슬픈 역사일수록 반복되지 않도록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잊혀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보편적인 스토리의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무게감이 크게 다가온다고 하겠다. 물론 앞서의 이유에서 설명했듯이 애국심에 너무 많은 걸 요구해 영화를 영화로 바라보지 못하고 감정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존재한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셋째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우선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일본인 배우들의 출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줄거리의 특성상 일본인들이 직접 출연하기에는 큰 결심이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응해 열연한 나카무라 토오루 분(사이고 쇼지로 역)을 비롯해 미츠이시 켄 분(히데요 역), 요시무라 미키 분(유리코 역), 그리고 일본의 저명한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 분(역사학자 역) 등은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나카무라 토오루 분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해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건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개인적으로 일본 배우들이 진지한 액션을 선보이는 장면을 본 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에 아쉬움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주연을 맡은 장동건 분(사카모토 마사유키 역)과 서진호 분(오혜린 역) 등의 채 설익은 연기력은 영화의 무게를 담기에는 다소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넷째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한국 영화의 액션 씬(scene)이다. 제작기간 4년에 약 8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것에 응하듯이 스크린은 세련된 총격전과 액션 장면을 꽉 채워 선보인다. 특히 극의 초반, 김준환(천호진 분)이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이끌고 ‘월령’을 되찾기 위해 이노우에 재단이 주최하는 박물관 전시회에 잠입하는 장면과 JBI(Japan Bureau of Investigation) 요원들과의 총격전은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과 화려한 액션을 가미시켰다. 개인적으로 영화 쉬리(1999)보다 한층 나아진 모습에서 그 사이의 한국영화의 발전상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CG(Computer Graphic) 기술의 한계가 여전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연출력의 부족함이다. 제법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을 조성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주인공인 사카모토(장동건 분)가 JBI 요원으로서 이노우에 재단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에서부터 JBI 내부에서 징계를 받고 역으로 레지스탕스의 편으로 돌아서기까지의 진행상황이 너무 급작스럽게 벌어지는 건 부자연스러운 전개이다. 특히 비리를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점차 독립투사로서의 자랑스러움으로 변화되는 심리적 변화를 어떠한 미장센을 거친다거나 하는 과정 없이 순식간에 반전시켜버리는 장면 전환은 연기도 연기지만 연출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손에 땀을 쥐고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들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필자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영화는 한국에는 아픈 상처, 이웃나라에게는 치욕의 상처. 이 둘 중 어디가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올바르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는 것, 과거를 진심으로 돌이켜보고 현재를 반성하며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관객들이 한번쯤 볼만한 영화로 충분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대한독립만세의 그 뜨거운 현장의 외침을 영화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러닝타임 단 134분만이라도 생생하게 느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