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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7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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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힘은 나를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크로니클

영화 ‘크로니클(2012)’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이동기(대외협력실)

 누구나 한번쯤 꾸게 되는 꿈이 있다. 내가 만약 슈퍼맨이 된다면? 또는 요즘 흥행 돌풍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마블의 히어로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면? 다크 히어로까지는 아닐지라도 H.G.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을 베이스로 이러한 상상을 확장시킨 영화, ‘할로우맨(2000)’은 이와 같은 질문에 순수한 아이들의 시각이 아닌 어른이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냉혹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답변한 작품이기도 하다. 과연 자신이 일반인의 평범한 능력을 벗어난 힘을 갖게 된다면 어떠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지금 필자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자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한 편의 영화가 있었다. 평범한 학생들이 우연한 기회에 엄청난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 단순하고 평범하고 무엇보다 식상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조미료 없이 이를 매우 사실적으로 다뤄 현실감마저 꽤 높은 영화. 오늘은 지난 2012년 필자에게 색다른 신선함을 선사했던 영화 한 편을 꺼내보고자 한다.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최악의 감독상 수상의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쉬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2012)’이다.

영화 ‘크로니클(201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사실 가장 최근 개봉했던 염상호 감독의 ‘염력(2017)’이 먼저 떠오른다. 뭐 나름 신선한 배경으로 시작했지만 소시민의 삶을 대변하고자 했던 스토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점이 흥행 실패로 이어져 개인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에 비해 이 영화 ‘크로니클(2012)’은 매우 현실적인 스토리를 보여준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흡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랄까.

 주목할 점은 영화의 대부분이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차용하고 있지만, 정확히 말해 완벽한 핸드헬드라고 보기엔 어렵다. 핸드헬드 촬영기법의 장점을 잘 이용하려면 화면의 생동감이 카메라에 포함돼야 한다. 이를테면 대상을 제대로 렌즈 안에 담지 못하고 사람의 눈높이와 시선에 맞춰 보다 익숙한 각도, 촬영하기엔 좀 어색한 각도를 담아낸다거나, 혹은 걸음걸이마다 카메라가 흔들려 안정감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핸드헬드 촬영은 너무나 안정적이고 억지스럽다. 앞에서 흡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필자가 얘기했던 바로 그 이유이다. 다큐멘터리는 팩트를 대상으로 이를 관객의 눈높이와 시선이 아닌 카메라와 감독의 연출 시각에서 접근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생동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데, 이 영화 또한 생동감이 낮을뿐더러 마치 지미집(Jimmy Jib) 정도는 사용하고 있는 것 마냥 카메라 움직임이 다큐멘터리처럼 꽤 차분하다. 이쯤 되면 감독이 굳이 왜 이 스토리를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게 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연출의 지향점이 단순히 현실감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염력이라는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여주고는 싶은데 현실과 동떨어진 요소를 관객들이 나름대로 사실감 있게 받아들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영화의 재미는 적어도 중반까지는 꽤 반감된다. 감독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소재를 다루면서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재미’를 줄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을 소개하는데 무려 영화 분량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 영화의 전개는 ‘실제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면?’을 제대로 가정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까에 초점을 모은다. 자, 이제 필자가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과연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영화 ‘크로니클(201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이를 위해 사전에 적절한 배경을 깔아놓았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첫째는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찌질하고 못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학교에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열등생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집안 환경이 화목하지 않거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감독은 이렇게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자신감이 위축된 상황을 미리 깔아놓아 새로운 능력이 생겼을 때 이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만들었다.

 둘째는 선과 악의 경계선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주어진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후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를 넘어설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랙션을 울리며 뒤따라오는 자동차를 한 순간에 밀쳐내 호수에 빠뜨리게 만든 사고이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고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들은 스스로 지켜야 할 경계선을 분명히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들이 가진 능력이 사용하기에 따라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표현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경계선이 갈수록 희미해져 감을 보여주는데, 마술파티는 이들이 이 경계선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기 위한 이벤트였지만 아슬아슬하게도 자신들의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과감하게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앤드류(데인 드한 분)와 아빠 사이의 불통과 가정의 불화이다. 엄마를 둘러싸고 서로의 입장을 부정하며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양쪽의 상황은 결국 앤드류가 스스로 분노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찌질한 못난이로 만들어 버리는 친구들, 자신의 환경과 입장을 무시하는 아빠, 병에 걸려 앓고 있는 엄마, 말만 들어도 답답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던 앤드류가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그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아니 끓어오르는 분노의 족쇄를 풀어버릴 대상을 찾게 되는 그 계기 말이다. 이는 갑자기 거미를 잡아 죽여 버리는 장면에서 드디어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크로니클(201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앤드류의 분노에 트리거 현상을 보여주는 장면을 혹자는 스티브(마이클 B. 조던 분)의 우연한 죽음으로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앤드류가 이때부터 어두운 힘의 측면으로 확연히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좀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다. 오히려 스티브의 죽음은 앤드류가 맷(알렉스 러셀 분)과 노선을 달리하게 되는 사건으로 작용한다는 거다. 필자는 이때부터 이 영화의 전개가 일본의 거장,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1988)’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앤드류의 각성은 아키라의 테츠오(사사키 노조무 분)가 스스로 힘을 각성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과 닮았다. 폭주하는 앤드류와 이를 막으려는 친구 맷의 전투 장면 또한 아키라(1988)의 테츠오와 친구 카네다(이와타 미츠오)의 대결과 매우 흡사한 면이 없지 않다. 결국 스스로 포식자를 자처하다가 오히려 잡아먹히는 것 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오토모 가츠히로가 아키라(1988)를 통해 관객들에게 페시미즘(pessimism)에 가까운 세계관 혹은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미래를 제시한 것에 비해, 이 영화 크로니클(2012)은 그러한 거시적인 세계관에까지 접근한 영화는 아니다. 아키라(1988)는 창조적인 미래를 위해 위기와 고통을 수반하고 그 체재의 파괴가 필요함을 주장했지만, 크로니클(2012)은 세계관의 제시보다는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에게 개인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또 하나의 영화의 아쉬운 점은 종반까지의 긴장과 스펙터클을 뒤로 한 채 마무리가 단순하고 너무 도식적이란 점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런 신선한 스토리야말로 제대로 된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예측 앞에서 뒤통수를 제대로 때리는 그런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구나,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러한 반전 말이다.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자면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크로니클(201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영화 크로니클(2012)은 자아에 대한 깨달음, 거대한 세계관의 파괴, 혹은 능력에 대한 각성을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감독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해와 ‘환경’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주목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달리 말하면 내가 어떠한 능력을 가졌을 때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이고도 유아적인 교훈은 관객들에게 그저 유치할 뿐이다. 진정한 ‘힘’은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받아들이고 다스리는 과정, 그것의 중요함이 이 영화의 타이틀이 ‘Chronicle’임을 드러내는 진정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