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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9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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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SALON

떨림 속 잊힌 추억을 꺼내보며...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누구나 과거를 가진다. 그리고 누구나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건 과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던지 간에 그 과거가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 모두가 과거를 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더욱 더 선명해지고 더욱 더 확고히 다져가기 위해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추억을 남기곤 한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그렇게 쌓여만 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추억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평범한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는 우리네 삶의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한 청춘의 ‘사랑’보다 오히려 ‘추억’에 집착하는 듯한 기운이 강하다. 추억의 아련함을 손끝에 남기며 과거를 추억삼아 앨범의 한 자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정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많은 요소들이 다양하게 사용됐다. 첫 번째 화면을 장식하는 오래된 라디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디서 이런 라디오를 소품으로 구했을까. 90년대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요소들을 듬뿍 담은 라디오를 갖췄다. 덕분에 제과점을 배경으로 한 동네의 색감은 나쁘지 않다. 오래된 제과점, 근처의 슈퍼마켓, 지나가는 자전거와 교복을 입은 학생들, 모두가 90년대의 애틋함을 안고 있는 듯 당시의 일상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보탬이 된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룹 모자이크의 ‘자유시대’나 신승훈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등이 흐를 때 미수(김고은 분)와 현우(정해인 분)의 위치와 표정, 소품의 배열 등은 두 사람의 감정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가슴에 와 닿게 표현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거다. 라디오, 가족, 소년원 얘기 등을 통해 두 사람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를 빠른 속도로 전개시켜 나간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 구성의 속도 자체가 매우 빠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너무 잔잔하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의 내용에 쉽게 몰입되지 못한다. 반면에 감성에 집착하다보니 건너뛰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영상은 천천히 흘러가는데 관객들이 느끼는 체감은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기대하는 건 90년대의 감성을 풍성하게 이끌어 내어주면서 그 속에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진하게 표현해주기를 기대했을 텐데, 사실 그런 게 많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유열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물론, PC통신 천리안과 북적대는 등하교길 버스, 오래된 라디오, 이런 것들의 감성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되돌리기엔 단순한 소품 외에도 가슴에 와 닿는 스토리텔링이 함께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프로그램은 이 작품에서 타이틀을 차지할 정도로 미수와 현우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실상 이 둘을 이끌어내지는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90년대와 0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조차 쉽게 해내지 못하고 뭔가 끊기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게 타이틀 자체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너무 어설프게 연결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그리워하는 감정 또한 중간 중간에 전혀 삽입되어 있지 않은 점 또한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말 그대로 감정의 따로국밥처럼 각각의 생활을 그려 넣어 각자의 삶을 액자 속에 억지로 구겨 넣고 있다는 느낌이 딱 알맞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점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색감이 무척 아름답다.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색감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분명 장점이 묻어나며 미수와 현우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또한 격동의 90년대를 이겨나가는 청춘의 한 자락으로서 충분한 모습을 보인다. 언제나 글을 쓰고 싶어 했던 미수의 꿈은 그녀를 출판사에서 일하도록 만들어주었고, 자신이 만든 책이 베스트셀러 6위에 도달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줄 땐 ‘적어도 그녀가 앞을 향해 이렇게 나아가고 있구나’, ‘IMF시대의 아픔을 이런 순간의 기쁨을 통해 이겨내고 있구나.’를 관객들 스스로 느끼게끔 만들어 주기도 한다. 현우 또한 영상제작의 꿈을 위해 대학생 창작집단을 통해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우연히 미수와 다시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우연은 관객들에게 이제 전혀 새롭지 않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되어 우연으로 끝나고 다시 우연으로 반복되는 삶이기에 다소 어설프지만 낯설지는 않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현우는 과거에 친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자신의 잘못으로 단정지어버린 세상을 원망하고 이에 굴복하며 그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피해자인 친구 정협의 어머니는 친구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잘못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를 기리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외면하지만 현우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할지 항상 마음 한편에 자신 스스로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쓰라림으로 살아간다. 미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우를 사랑하는 마음과 출판사 대표와의 현실적인 사랑에 대해 저울질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에 대한 순수한 추억과 사랑으로 현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지만, 엄마가 물려주신 제과점을 도로 찾겠다는 나름의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있기에, 그 꿈을 소중히 생각해주고 자신을 아껴준 출판사 대표의 제안을 단순히 외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우의 치기어린 투정으로 후자를 택했던 미수를 쫓아 언덕길을 뛰어 올라가는 현우의 뜀박질은 현우가 그녀에게 닿고픈 갈망이었다. 정상적인 삶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마음, 적어도 그녀 한 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친구 정협에 대한 사건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과 현실을 미수에게 들켜버렸을 때, 그가 가졌던 상실감은 미수에게 그리고 친구 태성(최준영 분)에게 거칠게 표현했지만, 그건 ‘화’나 ‘짜증’이 아닌 마지막 남은 기댈 곳마저 무너져버렸다는 상실감에 기인했다. 그런 상실감을 정리하고 난 후 그녀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걸 알아버린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상실감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음이 멀어진 그녀에게 닿고픈 갈망으로 변해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출처

 현우에게는 믿음이 필요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은자(김국희 분)와 미수는 자신을 믿고 신뢰를 해준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그가 기댈 곳의 빈자리를 만들어준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각 도넛츠를 먹기 위해 은자의 수제비 가게를 찾아와 쓴 소주를 들이키는 미수의 모습은 현우와의 추억을 되돌리고자 애쓰는 시간이다. 현실의 선택과는 달리 마음은 이미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음과 현실의 선택이 달랐음은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마무리로 달려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과연 흘러간 부분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이어질까 아니면 또다시 ‘유열의 음악앨범’처럼 한 순간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앨범 속 사진과 같이 인생 속 한 장의 추억으로 남겨지고 말 것인가에 대한 얘기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가 제 2의 영화 ‘건축학 개론(2012)’이 되기를 원했다. 여기서 영화 ‘건축학 개론(2012)’과 같이 바랐던 부분은 청춘의 한 자락이 되어버린 옛 사랑의 추억을 다시금 끄집어내는 행위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오히려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앨범을 다시 꺼내보는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은 매우 좋았다. 마치 가을 빛 충만한 하늘의 허공에 손가락을 마주 대고 햇살의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추억, 그 한 장의 추억을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의 애틋함처럼 간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DJ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아련히 전해오는 그 작은 떨림, 그 떨림 속 잊힌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