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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1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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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을 살아 요동치게 만든다... 포드v페라리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어떤 조건에서건 경쟁은 우수한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이 반드시 선의의 경쟁이 아닐지라도 라이벌 구도를 통해 서로를 의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서로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도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재미나다.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가 있었고 제대로 된 라이벌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적절한 조미료를 첨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극을 이끌어가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재미나게 엮었다는 거다. 스크린에서 ‘제임스 맨골드’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영화 <로건>(2017)을 떠올렸다. 그는 관객들이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속도를 조율할 줄 아는 연출자다. 그런 그가 스피드를 다루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도전이 될 것만 같다.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이다.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매출 불황에 빠져든 자동차 제작사 ‘포드’가 새로운 판매 활로를 찾고자 레이싱 경주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렸다. 포드의 경영주인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 분)는 그들보다 먼저 레이싱 대회를 장악한 ‘페라리’를 인수 합병하고자 접촉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페라리의 경영주인 엔초 페라리(레모 기론 분)의 비웃음을 사며 거절을 당한다. 이에 포드는 프랑스 르망 24시 대회의 우승자 출신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를 통해 페라리를 능가할 자동차 제작에 돌입하게 되고, 캐롤은 이를 계기로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를 찾아가 자신의 도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 영화는 레이싱 경주의 박진감에 다양한 사건을 곁들여 두 남자의 진한 우정과 도전을 제대로 그려낸다.

 여기서 왜 굳이 ‘페라리’여야 했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이 실화를 다룬 논픽션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당시의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영화의 초반 장면을 포드가 굳이 이탈리아의 페라리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포드는 매출 불황에 빠져든 자신들의 실패 이유를 저가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왔던 그들의 공정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자신들의 생산 시스템 문제라기보다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혀 있는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페라리가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든 이유는 그들과는 반대로 책임 공정에 따라 소수 생산되며 자신만의 강렬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인데, 포드는 바로 그러한 페라리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이는 이후 포드가 치열한 경쟁을 보이는 르망 24시 대회 출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켄 마일스는 캐롤 셸비와 함께 레이싱 경주에 적합한 자동차를 만드는 내내 자동차의 ‘균형’을 언급한다. 무게 배분과 바람을 읽는 디자인 등 멈춰서있을 때의 균형은 물론 달리고 있을 때의 균형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운전을 하는 그 순간에도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엔진과 브레이크의 한계를 스스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되뇌인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언급되는 7,000RPM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정점으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7,000RPM을 넘어서는 그 순간에도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가 떼었다를 반복하며 자동차의 한계점을 발끝으로 느끼고자 무던히 노력한다. 캐롤과 헨리 사이의 약속으로 데이토나 대회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기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켄은 자동차와 한 몸이 되어 한계를 읽고 이를 넘어섰다. RPM을 나타내는 계기판은 쉼 없이 요동쳤고 그 바늘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관객들의 마음 또한 불규칙적으로 들었다 놨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불독(Bulldog)은 17세기 초 황소를 잡는 개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다.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외모와 강한 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아 역사적으로 투견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캐롤이 켄을 불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특성을 고려한 애칭이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으며 어디에서건 사고를 치는 그의 화끈한 성격과는 달리 자동차 운전석에서 만큼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냉정해지는 태생적으로 열정적인 레이서임을 나타내는 켄의 성격을 빗대어 드러낸 말이다. 그랬던 그가 마지막 골인 장면에서 캐롤이 처한 상황을 끄집어내어 속도를 줄였던 상황은 자신보다 타인을 고려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홀로 달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스스로 기어를 다운시킨 그 장면은 관객들의 탄식을 절로 흘러나오게끔 만들었다. 여기에 자신의 우승 트로피를 어이없게 뺏기게 됐음을 인지했을 때도 덤덤하게 어깨를 들썩일 수 있었음은 레이서로서의 명성보다 순간의 기쁨에 만족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이 작품은 일본 선라이즈사 작가팀 ‘야다테 하지메’ 원작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와 닮은 구석이 많다. 단순히 레이싱 대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레이서의 도전과 열정, 삶과 인생 등을 외롭고 힘겨운 경주에 빗대어 잘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주행, 비포장 도로, 사막, 설원 등을 달리며 자동차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가혹한 레이스를 표현하고자 프랑스 르망 24시라는 치열한 전장의 한 가운데를 마련했다. 거기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레이스를 조종하고자 하는 윗선의 압박감과 레이서들 간의 견제, 자동차 차체를 다루는 시선과 피트에서의 역할까지 조명하고 있음은 이 영화가 단순히 레이싱 경주의 박진감만을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에서 스피드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약 2시간 3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르망 24시 대회에 무려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 만큼 마지막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이는 관객들에게 다소 무거운 짐으로 다가갔다. 스피드를 통해 느껴지는 긴장의 오르내림을 1시간 동안 유지시키는 건 그들에게도 꽤 벅찬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페라리와의 대결이 맥이 빠질 정도로 일찍 막을 내려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유지시켜달라는 요청은 무색하기만 하다. 실화를 다루고 있음을 감안한다고 해도 연출적 묘미가 부족함은 부분적이나마 아쉬울 따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포드v페라리(2019)’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그런 점에서 영화의 제목을 떠올려보면 굳이 페라리에 강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마지막 마무리가 관객들을 절로 숙연하게 만드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오히려 레이서로서의 인생과 켄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에 좀 더 집중하게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포드가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는 입장을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시켜 나타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영화는 어떤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는 두 젊은이의 우정과 도전을 제대로 그려냈다. 이들의 열정을 과감히 드러내는데 스피드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밟아대는 액셀러레이터가 엔진을 살아 요동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용기고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