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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4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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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바라보는 새로운 정의... 결혼이야기

영화 ‘결혼이야기’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정의 여운이다. 묘하게도 내레이션과 화면이 반어적인 것이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칭찬 같기도 하고 흉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속마음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웃음을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화면에서 비치는 그들의 결혼 생활은 너무나 가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작품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작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상황이 잿빛 어둠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내레이션과 화면이 따로 놀 때부터 뭔가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이 영화는 ‘결혼’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지만 사실 이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과정들을 보다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보다 재미를 더하고 말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하지만 슬픈 이야기, 영화 <결혼이야기>(2019)이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노아 바움백 감독은 섬세한 감정 처리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무용수를 꿈꾸는 평범한 여성의 독립 성장기를 그려낸 <프란시스 하>(2014)는 물론, 뉴욕에서 홀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또한 한 여성의 감정선을 날카롭고 세세하게 읽어낸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감독은 ‘뉴욕’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앞서의 두 작품이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 <결혼이야기> 또한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뉴욕을 벗어나 서부 반대편의 LA를 주 무대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찾아가려는 주인공의 속내를 읽고자 노력한다. 뉴욕에서 나름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 아닌 극단 대표이자 제작자인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의 성공이었다. 아내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은 이렇게 남편의 성공과 자신의 입장을 연신 비교하며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변호사 노라(로라 던 분)와 이혼 소송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내 일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어요.”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그녀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읽어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 그녀에게 노라가 “당신은 훌륭한 배우”라고 치켜 세워주는 건 그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라는 영화 내내 노련한 변호사로 그녀를 안팎으로 감싸 안아 그녀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소송을 이기기 위한 철저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빨간색 구두를 벗고 맨발로 쇼파 위에 올라가 그녀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안아주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게 일하는지 그녀의 세밀한 작업 능력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노라의 말은 니콜의 속마음을 감성적으로 건드렸고 결국 니콜이 자리에서 일어나 찰리와의 만남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눈물과 함께 뱉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누구나 그렇듯 결혼 생활과 이혼 사유는 제각각이다. 노라를 만나 찰리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고 현재에 이르게 되기까지를 나열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보다 그 감정을 적절히 억누르면서 과정을 전달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 동안 쌓아온 연기력의 노하우를 발휘하는 것도 같다. 노라 또한 아무런 말없이 듣고만 있는 모습을 비추는데 이 또한 대사 하나 없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장면 곳곳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이 씬은 작품의 전체에서 꽤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감정의 표현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결혼 생활과 이혼 과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족의 중요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과정을 통해 이에 대한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고자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언제나 그대로였고 찰리의 한 순간의 잠자리 실수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결국 그와 그녀의 속마음에는 결혼 생활이 가져온 무언의 부족함, 현재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분명 전제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부부가 이혼으로 치닫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신파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에 치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결혼’이라는 단어가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 지, 그리고 그 무게를 깨뜨리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떠한 책임을 지니는 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가 이 작품의 제목을 ‘이혼이야기’가 아닌 ‘결혼이야기’로 정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갑작스레 니콜의 이혼 소송 서류를 받아들게 된 찰리는 어안이 벙벙하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그 동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는데 대한 반성이다. 한바탕 정신적 소동을 겪은 후 두 사람이 아이를 가운데 두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가족으로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그때 니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결말을 잊어버렸어.”라고 얘기하는 건 그 동안 지속되어 온 결혼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대사이다. 결국 이 상황은 두 사람의 말과 행동, 서로에 대한 감정과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힘든 상황을 연출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속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감정선을 최대한 읽기 위해 세밀한 면까지 드러내려 애를 쓰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까지 말이다.

 정리하면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찰리는 일방적으로 당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쓴다. 극단을 우수한 방향으로 이끌어 낸 자신의 연출력과 장악력도 하나의 가정을 지켜내는 데는 한 없이 부족할 뿐이다.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 아들을 받아들이는데도 모자라 온통 실수 연발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돌려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영화의 종착역은 결국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혼’은 그 겉치레에 불과할 뿐 그들의 마음 속 세밀한 구석은 서로에게 늘 향해있다. 그게 물론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핑계 삼아 변호사를 빌어 감정을 마구 퍼부을 만큼의 화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배우 로라 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아주 잘 이끌어낸 배우로 아담 드라이버에게 한 표를 던진다. 쟁쟁한 남우주연상 경쟁자들이 워낙 많아 그의 연기력이 빛을 받지 못했을 뿐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때로는 속 시원한 폭발력으로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잘 드러냈다. 솔직히 이 작품을 통해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을 정도로 이번 영화가 필자에게 미친 연기력의 포스는 컸다. 결혼은 단순히 생활을 달리했던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생활을 함께 하는 단순한 문장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서로 생활을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한편으로 서로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그런 세심한 부분이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이 비친 영화, <결혼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