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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1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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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SALON

용기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기적같은 여행...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포스터 – 네이버 출처
글 - 이동기(대외협력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나마 서울에서 홀로 자취할 때면 등산은 자주 가곤 했었다. 청계산과 관악산은 내 단골 코스로 주말을 홀로 만끽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누구나 산을 오를 때면 발아래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넘어지지 않도록 앞을 살피게 되기도 하고 체력이 떨어져 고개를 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정상이라는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이유도 있다. 나는 누구에게나 이런 등산 방식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해 정상에 오른 후에는 뿌듯함을 느끼게 될 테지만, 그건 산의 꼭대기를 들렀을 뿐 그 산을 올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는 앞보다 옆을, 위보다 아래를 살펴야 한다.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내 옆을 지나가는 푸른 잎들과 졸졸 소리를 내는 계곡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 산을 다녀왔구나 하고 스스로 만족했다.

 여행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책을 읽다보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 있다. 여행지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여행 중에 접한 음식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소를 다니며 접하는 것들에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든다는 건 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제각각의 문화를 접하고 그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모양과 맛이 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나누고 공유한 대화 또한 여행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알찬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왠지 혼자만의 여행이 참 어울리는 것 같다. 이미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도 충분히 좋은 추억이 될 테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 새로운 환경을 느끼기에 이보다 좋은 경험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영화 <#살아있다>(2020)를 보면서 세상은 ‘살아있는 좀비들의 사회’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제야 비로소 그 틀을 깨려는 시도와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는 여전히 견고한 틀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산후조리원을 거쳐 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생명 탄생의 체계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 교육과정 또한 어린이집과 초중고교를 지나 고등교육 과정인 대학교마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추세가 됐다. 여기에 취직과 결혼, 육아와 교육 등의 과정은 누구나 때가 되면 거쳐야만 이상하지 않은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상이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 틀에서 한 번쯤 벗어나보는 것도 어떨까 한다. 혼자만의 여행은 나를 재충전하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깨워주는 한편,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에서 그 희망을 잠시나마 느꼈다.

 라이언 머피 감독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계속해서 돌이켜보게 만든다. 세상이 바라보는 ‘나’, 그들이 요구하는 ‘나’에 대한 틀을 깨뜨리고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바라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끔 말이다. 리즈(줄리아 로버츠 분)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작가로서의 삶에 충실했고, 남편 스티븐(빌리 크루덥 분)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에게 언제나 되묻고 있던 질문은 ‘내 삶에 과연 만족하고 있는가.’였다. 이럴 때면 흔히 ‘배부른 소리’라는 쓴 소리도 나올 법하다. 거기에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여행길은 금전적인 기반이 없으면 쉽게 나설 수 없는 여행이었으니까 말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삶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기폭제가 되는 문장이 참 재밌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며 매일 신에게 기도하는 이에게 갑자기 신이 나타나 ‘인간아, 제발제발제발 복권이나 사고 빌어라.’라고 외쳤다는 내레이션 말이다. 마음만 먹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결국 모든 건 행동하기에 달렸으니까. 오랫동안 견고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내려놓을 줄 안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용기다. 리즈는 살찌는 게 두려워 피자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는 소피(튜바 노보트니 분)에게 계속해서 피자를 권한다. 살찌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자고 속삭이며 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먹고 싶은 피자를 실컷 먹은 후 튀어나온 배에 알맞은 사이즈의 옷을 쇼핑하러 길을 나선다.

 용기를 내어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 그녀도 사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실컷 먹은 후에 인도로 여정을 넘겨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자 했던 거다. 그녀 또한 누구나 그렇듯이 여행을 마친 후에 다가올 인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도 여행은 한 줄로 요약된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는 것. 신이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지 않듯이, 그녀는 기도를 통해 부족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는 그 순간부터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그녀를 지금까지의 여정으로 이끈 발리의 케투(하디 스비얀토 분) 또한 그녀에게 신도 자신도 너무 믿지 말라고 권한다. 모든 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혼란스러워지니 내 안에 균형을 잃지 말고 스스로 편안해지는 게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한 장면 – 네이버 출처

 그녀의 오랜 여행은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녀에게 용기를 낸 펠리프(하비에르 바르뎀 분)에게 그녀가 ‘아트라베시아모(같이 건너보자)’를 건네며 손을 내미는 모습이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간결하고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생을 정해진 틀에 끼워 넣고 건조한 삶을 살기보다는 삶에서 자신을 찾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기를 권하는 것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해 많은 걸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영화는 이조차 깊게 고민하지 말고 행동에 옮겨보면 모든 게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쉽게 쓰인 문장처럼 말처럼 쉽다면 영화가 굳이 힘겨운 메시지를 남기고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만큼은 권하고 싶다. 그 잠깐의 여유가 새로운 생각과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다는 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