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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5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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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유리의 비밀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유리의 비밀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유리의 비밀

 오랜 옛날에는 유리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유리로 만든 물건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우리가 물 마실 때 쓰는 유리잔을 과거로 가지고 돌아간다면, 왕에게 바쳐야 할 만한 고급 제품이 될지도 모른다. 20세기 들어 유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우리는 건축, 생활용품 등 다양한 곳에서 유리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유리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유리의 주성분은 이산화규소인데, 여기에 어떤 물질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성질이나 색깔이 달라진다. 자, 그러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어떤 다양한 유리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뜨겁게 해도 되는 유리가 따로 있다

유리컵

 먼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리부터 살펴보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컵이나 그릇 같은 용기다. 깨지면 다칠 수 있지만, 예쁘기도 하고 플라스틱과 달리 뜨거운 음식을 담아도 유해물질 걱정이 별로 없다. 하지만 보통 유리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직접 가열하는 것이다. 필자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친구 녀석 하나가 라면 끓일 냄비를 찾지 못해서 커다란 유리 그릇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바로 올렸던 것이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스스로도 반신반의하고 있던 터라 그러지를 못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이 여러 조각으로 깨지면서 물이 다 쏟아지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유리를 직접 가열하면 깨지는 건 유리의 팽창 때문이다. 유리는 열전도율이 낮아서 열을 가하면 뜨거워진 부분이 팽창하는 동안 다른 부분은 아직 뜨거워지지 않아 부피가 팽창하지 못한다. 이런 불균형 때문에 깨지는 것이다.

굳이 불에 대지 않아도 차가운 유리에 갑자기 뜨거운 물을 부으면 깨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열해도 멀쩡한 유리 냄비 같은 제품도 있다. 붕규산염이라는 물질이 들어간 붕규산 유리로 만드는 제품이다. 이런 내열 유리는 열팽창률이 낮아서 일반 유리보다 열에 더 잘 견딜 수 있다. 따라서 유리에 열을 가하고 싶을 때는 용기가 내열 유리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기스가 안 나는 비결

 또 요즘에는 가구나 컴퓨터 케이스 같은 곳에 강화유리를 사용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쪽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서 내부가 시원하게 보이는 케이스를 사용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강화유리는 유리를 약 600도로 가열한 뒤 표면에 차가운 바람을 불어 재빨리 식히는 방식으로 만든다. 그러면 일반 유리보다 훨씬 강한 강화유리가 만들어진다. 화학적인 방법으로도 강화유리를 만들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이 종일 손에서 떼지 않다시피 하는 스마트폰 화면이 이런 강화유리로 만들어 충격이나 흠집에 강하다. 코닝의 고릴라 글래스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유리를 칼륨이 들어 있는 용액에 담가 두는 처리를 하면 유리 표면에서 유리에 들어 있는 나트륨 이온이 칼륨 이온으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작은 나트륨 이온 대신 커다란 칼륨 이온이 들어가 빽빽해지기 때문에 더욱 단단하고 흠집에 강해진다. 수시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가방 속에서 뒹굴게 해도 유리가 멀쩡한 건 이 덕분이다.

적외선을 반사해 더 따뜻하게

프리즘

 유리가 빛을 통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성질을 바꾸어 유용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반 유리는 굴절률이 높지 않아 렌즈나 프리즘 같은 광학 기기에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데, 산화납이나 이산화티타늄 같은 물질을 첨가하면 굴절률이 높일 수 있다. 흔히 크리스탈이라고 부르는 잔이 납유리로 만든 것이다. 굴절률이 높은 유리로 잔을 만들면 일반 유리잔보다 더 예쁘게 빛이 난다. 하지만 건강에 유해할 수 있어 오늘날에는 납 성분이 잘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건물 창호에 쓰이는 로이(Low-E) 유리는 빛을 통과시키는 성질을 바꾸어 단열 성능을 높인 제품이다.

 이 유리는 은과 같은 금속으로 아주 얇게 코팅이 되어 있어 특정 빛을 반사한다.보통 빛을 반사하면 투명성이 떨어지지만, 이런 유리는 가시광선을 통과시켜 실내를 밝게 해주면서 실내에서 난방으로 생기는 원적외선은 반사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덕분에 난방을 적게 하고도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렇듯 그냥 유리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갖도록 만든 유리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이런 용도로도 유리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든다면 그 유리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파헤쳐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