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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7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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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노벨상 잔치를 벌인 꿈의 소재

노벨상 잔치를 벌인 꿈의 소재

노벨상 잔치를 벌인 꿈의 소재

 우리는 매일 전기를 사용합니다. 전등, 가전제품, 컴퓨터, 스마트폰 등 수많은 제품이 전기로 작동하지요. 그런데 이들이 한창 작동할 때는 열을 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옆구리를 만져 보면 따뜻하고, 스마트폰도 한참 쥐고 있으면 손에서 땀이 납니다.
 컴퓨터 같은 경우에는 열이 많이 나는 부품에 냉각용 팬이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열이 나는 건 전기 저항 때문입니다. 전기 저항은 물질이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아무리 전기가 잘 통하는 구리 같은 물질이라고 해도 전기 저항은 0이 아닙니다. 전류의 흐름이 방해를 받으면 열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에너지의 손실이 생깁니다. 전기가 발전소에서 송전선을 타고 가정까지 오는 동안에도 에너지는 꾸준히 손실됩니다. 그런데 전기 저항이 0인 물질도 있습니다. 이런 물질을 초전도체라고 합니다.

초저온에서만 가능한 신기한 현상

카메를링 오네스(출처: 위키백과)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금속의 전기 저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오네스가 사용한 금속은 수은이었습니다. 액체 헬륨으로 수은의 온도를 계속 낮추며 전기 저항을 측정했지요. 온도가 낮아질수록 저항이 줄어들었는데, 그러다가 영하 약 269도에서 수은의 전기 저항이 0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연구로 오네스는 191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납과 나이오븀 같은 다른 물질도 극저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히는 건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실마리가 나타난 건 40여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존 바딘과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는 힘을 합쳐 초전도 현상을 연구했고, BCS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으로 세 사람은 197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이론은 영하 약 243보다 낮은 온도에서 일어나는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낮은 온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생활에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고온 초전도체를 찾아

액체 질소로 냉각된 고온 초전도 위에 떠 있는 자석

 하지만 곧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80년대에 독일의 요하네스 베드노르츠와 스위스의 카를 알렉산더 뮐러가 영하 약 238.15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물질은 금속이 아니라 평소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세라믹 소재였습니다. 곧이어 영하 약 180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영하 180도는 저렴한 액체 질소를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온도였으므로 초전도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두 사람은 이 공로로 198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과거보다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고온 초전도체라고 합니다. 이후 여러 가지 고온 초전도체가 발견됐고,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온도도 점점 올라갔습니다. 2003년에도 노벨 물리학상은 초전도체의 연구에 큰 공헌을 한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초전도체는 여전히 수수께끼의 존재입니다. 아직 과학자들은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까지 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특히 상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 있을지는 큰 관심거리입니다. 상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보통 온도를 말합니다. 상온 초전도체가 가능하다는 건 별다른 냉각 장치 없이도 전기 저항이 0인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eissner_effect_p1390048.jpg

전기 저항이 0이 된다면

컵에 담긴 액체 헬륨 출처 : 위키백과

 만약 일상적인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상온 초전도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우리 세상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먼저 발전소에서 각 가정까지 이어지는 송전선을 초전도체로 바꾸면, 송전 과정에서 전기를 전혀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쓸 수 있습니다. 전기가 필요 없을 때는 저장했다가 나중에 다시 써도 손실이 생기지 않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오염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겠지요.

 또, 현재 초전도체를 사용하는 기술을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에도 초전도 전자석이 쓰입니다. 지금은 값비싼 액체 헬륨을 이용하는데, 상온 초전도체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훨씬 저렴하게 MRI를 찍을 수 있을 겁니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주목 받는 핵융합과 입자물리학 연구에 쓰이는 가속기도 초전도체를 사용하는데, 장치를 만드는 게 더 쉬워지겠지요. 자기부상열차도 상온 초전도체가 있으면 더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아직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상온 초전도체를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전도체에 관해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초전도체 관련 연구로 노벨상이 벌써 여러 차례나 나왔지만, 앞으로도 초전도체의 원리를 밝히거나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한다면 노벨상은 떼놓은 당상입니다. 초전도체 연구로 또다시 노벨상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