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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8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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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노벨상으로 보는 재료과학] 반도체 없는 세상, 상상할 수 있을까?

반도체 없는 세상, 상상할 수 있을까?

반도체 없는 세상, 상상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소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반도체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등 수많은 제품에 반도체가 쓰이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없다면, 우리는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할 겁니다.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초창기의 컴퓨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컸습니다. 예를 들어, 모클리와 에커트가 만든 에니악은 무게가 30톤을 넘었습니다. 만드는 데 들어간 진공관의 수는 1만 8000여 개였습니다. 컴퓨터를 방 한 구석에 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작업해야 할 정도였지요. 이후 트랜지스터라는 반도체 소자가 쓰이면서 컴퓨터는 크기가 작아졌고,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작은 칩에 넣어 만드는 집적 회로가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컴퓨터가 나타났습니다. CPU나 램 같은 컴퓨터 부품의 기본이 바로 이 트랜지스터입니다.

삐걱거렸지만 성공적이었던 트랜지스터 발명

윌리엄 쇼클리(출처: 위키피디아)

 1940년대 미국 벨 연구소는 진공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맡은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와 월터 브래튼, 그리고 새로 합류한 존 바딘 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쇼클리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어떤 문제에서 막혀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딘과 브래튼은 쇼클리의 설계에 변경을 가하며 계속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1947년 가을에 우연한 계기로 깨달음이 찾아왔고 두 사람은 여러 차례의 실험 끝에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개발 과정과 이후의 일이 매끄러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벨 연구소는 쇼클리를 빼고 바딘과 브래튼 두 사람의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했고, 이에 쇼클리는 분개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연구라는 것이었지요. 심지어는 단독으로 특허를 신청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쇼클리는 연구에 매달린 끝에 새로운 형태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는 쇼클리가 다른 두 사람을 배제하고 작업했습니다. 한 팀이었으면서도 따로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셈이었지요. 비록 이런 사연이 있었지만, 이들은 트랜지스터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에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Jr, 1910. 2. 13 ~ 1989. 8. 12)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모아

집적회로 출처: (CC BY-SA)Zephyris@Wikipedia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은 지 2년 뒤인 1958년 미국의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일하고 있던 잭 킬비는 집적 회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집적 회로는 여러 가지 기능을 구현하는 회로와 트랜지스터를 칩 하나에 넣어서 만든 것입니다. 수많은 트랜지스터로 이루어진 회로를 조그만 칩 하나에 넣었기 때문에 컴퓨터는 더욱 작고 빨라졌고, 소모 전력도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이오늘날의 집적 회로는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트랜지스터가 수십억 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로의 선폭도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관련 뉴스를 보면 ‘몇 나노미터’라는 수치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게 회로의 선폭을 뜻합니다. 나노는 10억 분의 1을 뜻하는 단위로, 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미터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크기이지요.

 반도체 공정은 2000년대 초반에 두 자릿수 진입에 성공했고, 지금은 선폭이 5~7나노미터인 반도체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선폭이 작을수록 칩에 더 많은 소자를 넣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면적의 재료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 생산성도 좋아집니다. 앞으로 2~3나노미터까지 계획에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잭 킬비는 집적 회로를 만든 공로로 200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더욱 커지는 반도체의 중요성

반도체 생산 공정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원격 수업,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컴퓨터 부품 가격이 올라갔고, 새로 나온 게임기도 공급량이 달려 구하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업계도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올해 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반도체는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전략 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같은 여러 나라는 이미 그렇게 여기고 있고, 우리나라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로 반도체 소재 및 장비를 국산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이제는 미래 반도체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의 공정을 미세하게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소재를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노벨상의 주인공이 된 반도체가 앞으로는 어떻게 변신할지 궁금해집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