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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1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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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 광섬유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 광섬유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 광섬유

 오늘날 우리는 통신을 할 수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을 우리는 마치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이용합니다. 하지만 통신이 이렇게 자유로워진 데는 혁신적인 소재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무선 통신에 익숙하지만, 전체 통신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건 케이블입니다. 무선 통신으로 전 세계를 연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손에 든 스마트폰이 무선 통신을 이용한다고 해도 결국은 어딘가에 있는 유선망에 접속하게 되지요. 해저에 놓여 대륙과 대륙을 잇는 케이블은 세계 통신망의 중추입니다. 이와 같은 해저 케이블은 수천 킬로미터를 이어야 하며 어업이나 지진 등으로 손상될 수 있어서 매우 굵고 튼튼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막상 단면도를 보면, 실제로 통신을 담당하는 부분은 중심에 있는 가느다란 케이블 10여 가닥입니다. 바로 그 케이블이 오늘날의 통신을 책임지는 광섬유입니다.

유리선으로 빛을 보낸다

광섬유 내부의 빛의 전반사 / 출처 : NAVER  화학백과

 20세기 중반 미국의 전화 산업은 급격히 성장 중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면 전체 가정의 80퍼센트가 전화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장거리 통신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구리 선만으로 통신량을 감당하기에는 힘들었고, 통신 기업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1960년대에 레이저가 등장하자 많은 연구자가 레이저를 이용해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저는 전파보다 주파수가 높아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했습니다. 광섬유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광섬유는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가늘고 긴 섬유입니다. 광섬유의 한쪽 끝에서 빛을 통과시키면 내부에서 빛이 계속해서 반사하며 반대쪽 끝까지 진행합니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전기 신호를 빛으로 변환해 데이터를 송신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통신 기술 개발의 초창기에는 광섬유를 이용해 빛을 멀리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동 과정에서 손실이 너무 컸거든요. 10미터만 가도 빛이 10분의 1로 약해지는 수준이었지요.

유리는 얼마나 투명해질 수 있을까?

찰스 가오 / 출처 : 위키피디아

 홍콩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전기공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찰스 가오가 광통신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빛으로 통신을 하려면 빛을 손실 없이 멀리 보낼 수 있는 광섬유가 필요했습니다. 가오의 연구팀은 다양한 광섬유와 유리를 시험하며 빛이 손실되는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유리 종류에 따른 빛의 흡수와 반사, 산란을 체계적이고 주의 깊게 분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실을 줄일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유리의 순도는 빛의 흡수에 영향을 끼칩니다. 가오는 산란 같은 물리적 현상보다 유리의 순도가 빛의 전달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불순물을 줄인 유리를 만들 수 있다면, 빛을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았습니다. 1966년 가오는 순도 높은 광섬유를 이용해 장거리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섬유를 이용해 텔레비전 채널 200개 혹은 전화 통화 20만 건을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오의 발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광섬유를 만들 기술이 없는 당시의 현실과 이론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연구자가 미래의 통신은 광섬유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신의 아버지가 된 가오

통신의 아버지가 된 가오

광통신 과정 / 출처 :  NAVER 두산백과

 가오는 논문을 발표한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여러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동료 연구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원찮은 반응을 보인 곳도 있었지만, 가오의 이론에 호의적인 곳도 있었습니다. 1969년에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에 가장 순도가 높은 유리를 가지고 빛이 손실되는 정도를 측정했고,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가오의 이론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0년 미국의 유리 제조 기업인 코닝이 통신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빛을 보낼 수 있는 광섬유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광통신 연구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방 안에 앉아서 세상의 수많은 소식과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된 건 광섬유를 이용한 통신의 혁명 덕분입니다. 광통신 분야를 개척한 찰스 가오는 이 공로로 200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답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