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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2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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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별빛까지 포착하다, CCD

별빛까지 포착하다, CCD

별빛까지 포착하다, CCD

 필름 카메라를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나이가 30~40대라면 둘둘 말린 필름을 넣어서 사진을 찍어 보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찍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때는 사진이 잘 찍혔는지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보는 게 매우 힘듭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기 때문이지요. 디지털카메라는 반도체로 만든 이미지 센서를 사용해 사진을 찍고, 사진은 디지털 파일 형태로 메모리에 저장합니다. 사진에 관심이 많다면,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올 때 어떤 이미지 센서를 사용했는지에 관심을 갖기도 하지요.

한 시간 만에 생각해낸 CCD

(좌)윌러드 S.보일, (우)조지 E.스미스 / 출처: 위키피디아

 디지털카메라에 쓰이며 필름을 시장에서 퇴출시킨 이미지 센서는 1969년에 개발된 CCD입니다. 미국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라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가 개발했지요. 두 사람은 이 공로로 2009년 광통신을 개척한 찰스 가오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벨연구소는 ‘마그네틱 버블’이라고 불리는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윌라드와 스미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소재와 구조를 이용하는 전자 기기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연구소에서는 두 사람을 그냥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마그네틱 버블을 상용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거든요.

 마침내 연구소가 윌라드가 수장으로 있던 부서의 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마그네틱 버블을 연구하는 곳으로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자 윌라드는 마그네틱 버블과 경쟁할 수 있는 반도체 장치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의 미래를 바꾼 CCD를 떠올리는 데는 불과 한 시간가량이 걸렸습니다. 1969년 10월 17일, 윌라드와 스미스는 한 시간 정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CCD의 기본 구조를 만들고 작동 원리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급히 만든 연구팀이 최초의 CCD를 제작했고, 두 사람은 이것을 디지털회로 또는 이미지 장치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당시에 화상 전화용으로 덩치 큰 카메라를 개발하고 있던 연구소는 CCD를 이미지 장치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게 되자 곧 연구에 들어가 1970년에 최초의 CCD 이미지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다

CCD 칩을 사용한 디지털 카메라의 구조 / 출처: NAVER 화학백과

 CCD는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줍니다. 이 신호를 이용해 화상을 얻어내는 것이지요. 빛을 많이 받은 부분에서는 그만큼 전자가 많이 생기니 어디가 밝고 어디가 어두운지 기록할 수 있습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녹색을 통과시키는 색 필터를 달아서 정보를 합성하면 컬러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이 보지 못하는 적외선 영역에서도 촬영할 수 있습니다. 가시광선을 차단하는 필터를 끼우면 적외선 카메라가 되는 거지요.

 CCD를 이용한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는 1975년 이스트먼 코닥에서 개발했습니다. 무게가 거의 4킬로그램에 가까웠고, 해상도는 고작 100x100에 불과했습니다.

 요즘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고성능 디지털카메라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듭니다. 한편, CCD의 원리에는 또 다른 노벨상 업적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입니다. 광전효과는 금속이나 반도체가 빛을 받으면 전자를 내보내는 현상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던 현상이었지만, 빛이 파동이라고만 생각했던 20세기 초에는 이 현상을 설명할 이론이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뿐 아니라 입자의 성질도 갖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업적으로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디지털카메라에서 우주망원경까지

허블 우주 망원경 / 출처: NAVER 지식백과

 요즘에는 가격이 저렴하고 소비 전력이 적은 CMOS 센서가 CCD 센서를 많이 대체하고 있지만, CCD는 개발 이래 디지털카메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광학 장비에 쓰이며 사람의 눈을 대신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계산할 때 쓰는 바코드 스캐너에도 이런 이미지 센서가 들어있지요. 몸 내부를 살펴보는 내시경 같은 광학 의료기기에도 쓰여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CCD는 천문학에서도 활약하며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훨씬 더 넓혀주었습니다. 1990년에 우주로 올라간 허블 우주망원경에도 CCD 이미지 센서가 들어있습니다.

 CCD는 기존의 필름보다 빛에 훨씬 더 예민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멀고 어두운 천체의 빛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출 시간이 짧은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망원경은 노출 시간이 길어서 이미지 센서를 냉각하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어디서나 들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영원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먼 우주까지 보여주는 천체망원경에 이르기까지, 만약 CCD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요?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