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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3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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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그래핀은 정말 꿈의 신소재가 될까?

그래핀은 정말 꿈의 신소재가 될까?

그래핀은 정말 꿈의 신소재가 될까?

 탄소는 지구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원소입니다. 당장 지구의 생명체를 이루는 유기물이 탄소화합물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물질이 탄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석유 역시 탄소화합물이지요. 이는 탄소가 매우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탄소 원자들만 모여서 물질을 이루기도 합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가 그렇습니다. 이 둘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이지만, 성질이 확연히 다릅니다. 흑연은 연필심으로 쓸 정도로 시커멓고 무르지만, 다이아몬드는 대단히 단단하고 투명합니다. 이처럼 탄소 원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합 방식이 달라 성질이 다른 물질을 통틀어 탄소 동소체라고 합니다. 지난 4편에서 풀러렌이라고 하는 탄소 동소체를 소개한 바 있지요. 풀러렌이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 된 지 14년 만에 또 다른 탄소 동소체가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래핀이라는 물질입니다.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인물

좌.안드레가임, 우.콘스탄틴 노보셀로프 /  출처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연결되어 2차원 평면을 이루고 있는 물질입니다. 각 육각형의 꼭짓점에 탄소 원자가 하나씩 있는 모습이지요. 이와 같은 탄소 동소체가 있을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이론으로 존재했습니다. 소량의 그래핀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래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연구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가임은 러시아 태생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물리학자입니다.

 가임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요, 바로 2000년에 이그노벨상을 받은 일입니다. 이그노벨상은 매년 황당한 연구를 한 과학자를 뽑아서 주는 상입니다. 물론 일반인이 보기에는 황당해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의미를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임은 2000년에 자석을 이용해 개구리를 공중부양하는 방법을 연구해 이그노벨상을 받았습니다. 2010년에는 그래핀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최초로 두 상을 모두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는 가임의 제자로 러시아 태생이지만 영국 시민권도 갖고 있습니다. 가임과 함께 2010년 노벨상을 받았을 당시 36세로 상당히 젊은 수상자였지요. 현재는 싱가포르국립대와 맨체스터대의 교수로 있습니다.

재미로 실험하다 발견한 그래핀

가임과 노보셀로프 박사가 노벨 박물관에 기증한 셀로판 테이프와 흑연 덩어리 / 출처 : 위키미디어

 이 두 사람이 그래핀을 분리하는 방법을 찾아낸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가임과 노보셀로프는 종종 ‘금요일 밤 실험’이라는 모임을 열었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평소 연구와 관계없이 재미 삼아 간단한 실험을 하는 모임이었지요. 어느 금요일 두 사람은 셀로판테이프를 흑연 덩어리에 붙였다 떼며 흑연을 얇게 벗겨내는 실험을 했습니다. 아주 얇은 물질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문득 두 사람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얇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계속해서 셀로판테이프로 흑연을 얇게 떼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벗겨진 두께가 원자 하나에 불과한 그래핀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분리해 낸 그래핀의 성질을 연구한 결과를 2004년에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연구팀이 그래핀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셀로판테이프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그래핀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먼저 흑연을 만든 뒤 손이나 도구로 그래핀을 한 겹씩 떼어내는 방식이 있습니다. 가임과 노보셀로프가 셀로판테이프로 그래핀을 떼어냈던 것도 이런 방식에 속합니다. 또는 화학 반응을 이용해 금속 표면에 그래핀을 만드는 방식도 있습니다.

많은 특성이 우수한 꿈의 신소재

그래핀 / 출처 :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

 그래핀은 구조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이어서 매우 튼튼합니다. 강철보다 100배 이상 강할 정도지요. 구리보다 전기가 잘 통하는데 신축성이 좋아 구부리거나 늘려도 전기 전도성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열도 구리보다 잘 전도하지요. 이와 같은 여러 특성이 굉장히 우수해 꿈의 신소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투명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차세대 반도체 등이 그래핀이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이 있는 분야입니다.

 물론 이런 산업에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한계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활용이 지지부진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핀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벨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선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그만큼 그래핀의 향후 가능성을 크게 보았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래핀에 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기도 하고요. 앞으로 그래핀이 정말로 꿈의 신소재라는 명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