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4 WEBZINE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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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과학 이야기

[노벨상으로 보는 재료과학] 우리가 알던 고체가 아니다, 준결정

우리가 알던 고체가 아니다, 준결정

우리가 알던 고체가 아니다, 준결정

 물질의 상태가 기체, 액체, 고체로 나뉜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기체는 공기처럼 형태가 없고 부피도 변합니다. 액체는 부피는 일정하지만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고체는 부피와 형태가 일정한 단단한 물질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물질은 보통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 상태에 있습니다. 보통 기체와 액체 상태인 어떤 물질의 온도를 계속 낮추다 보면, 결국 고체가 됩니다. 물을 냉각하면 얼음이 되듯이요. 물질을 이루고 있는 분자의 운동이 느려지다가 마침내 일정한 배열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유리처럼 원자 배열이 불규칙한 고체도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많은 고체는 원자 배열이 일정한 결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오각형으로는 평면을 못 채워

준결정의 구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체가 결정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82년 이스라엘의 재료공학자 댄 셰흐트만이 중간 어딘가에 있는 물질을 발견하면서 그 고정관념이 깨어졌지요. 그게 바로 2011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었던 ‘준결정’입니다. 준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원자 배열이 규칙적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평면을 똑같은 도형으로 빈틈없이 가득 채운다고 생각해 봅시다. 정삼각형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각 하나가 60도이므로 한 점 주위에 여섯 개를 모으면 360도, 즉 평면이 됩니다. 정사각형, 혹은 직사각형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한 점 주위에 네 개를 모으면 평면을 채울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내각 하나가 120도인 정육각형으로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오각형은 내각의 크기가 108도입니다. 108은 서너 번 더해서 360을 만들 수 없는 수입니다. 따라서 정오각형만으로는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없습니다. 나머지 도형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과학자들은 정삼각형이나 사각형, 정육각형과 같은 형태로만 결정 구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반복성이 없는 단위 도형이라도 2가지 종류를 이용하면 평면 공간을 모두 채울 수 있다. 이런 펜로즈 타일링의 개념을 도입하면 준결정의 구조를 풀 수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학계의 조롱을 이겨내다

댄 셰흐트만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댄 셰흐트만은 1941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쥘 베른의 소설을 매우 좋아해 그 속에 등장하는 공학자처럼 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재료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셰흐트만은 금속의 미세구조와 물리적 특성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셰흐트만은 미국 국립표준국(현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준결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망간이 들어있는 알루미늄 합금의 결정 구조를 관찰했는데, 원자의 배열이 이상했습니다.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 구조가 보였던 것입니다. 오각형을 규칙적으로 배열해 평면을 채웠다는 것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셰흐트만의 발견은 학계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동료들조차 준결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셰흐트만은 쫓겨나듯 연구실을 옮겨야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저명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준결정 같은 건 없고, 오로지 준과학자만 있을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승자는 셰흐트만이었습니다. 준결정의 구조를 ‘펜로즈 타일링’이라는 수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다른 준결정도 속속 발견되었습니다. 증거가 계속 나오자 결국은 결정에 관한 정의를 바꿀 수밖에 없었지요.

새로운 금속합금을 만든다

준결정강화마그네슘 합금(왼쪽, 합금의 구조)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 초경량 비행기(오른쪽, 출처: gettyimages)의 재료로 쓸 수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면 이름도 특이한 이 준결정이라는 물질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아직은 준결정에 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산업적인 활용도가 크지는 않은 상황입니다.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알아낸 준결정의 특징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응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준결정 물질은 단단하고 잘 마모되지 않습니다. 열이나 전기를 잘 전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면도날이나 수술 기구 같은 고강도 금속을 만드는 데 쓸 수 있습니다. 프라이팬 코팅에 응용하면 음식물이 잘 들러붙지 않게 만들 수도 있고요. 또, 단열재, LED, 엔진 등에 쓰기 위한 연구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준결정의 구조를 이용해 새로운 합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금속은 결정의 구조에 따라 특성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금속 합금의 구조를 바꾸어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이지요. 혹은 원하는 특징을 얻기 위해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이론을 깨뜨리며 등장한 준결정이 어떤 새로운 재료를 우리에게 제공해줄지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