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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언론보도]"이 친구 10년은 더 열받게 해야죠"[죽마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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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03-13 14:31 조회7,6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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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연구소 박종옥 선임기술원과 함께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만여 회 시험을 수행한 '만능재료시험기'. /재료연구소 제공


"이 친구 10년은 더 열받게 해야죠"
[죽마고물]재료연구소 박종옥 선임기술원 '만능재료시험기'와 함께한 25년

2009년 03월 13일 (금)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만능재료시험기'라고 했다. 이름에서부터 일종의 '포스'가 느껴졌는데, 역시 26년 동안 1만여 회의 시험을 수행한 재료연구소의 '큰형님'이라고 한다.

재료연구소(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는 1981년 한국기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창원에서 발족해 지금까지 국내 재료기술을 선도하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만능재료시험기는 바로 이 재료연구소의 설립 초창기인 1983년에 도입됐다. 당시 1억 4000만 원 정도 나가는 고가 장비였다.

재료연구소의 '큰형님' 만능재료시험기는 지금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보통 이 같은 검사기계의 내구 연한이 10년에서 15년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10년을 더 사용한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세월을 보내는 데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현재 만능재료시험기 책임자는 박종옥(59·선임기술원) 씨다. 박 씨는 만능재료시험기가 도입된 이듬해인 1984년에 입사해 25년 동안 이 기계와 동고동락한 엔지니어다.

최신 디지털 장비가 속속 개발돼 출시되고 있지만, 아직도 박 씨는 아날로그 방식의 만능재료시험기를 통해 재료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첨단 소재 개발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검사 결과의 정밀함과 정확성은 여타 디지털 기기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박종옥 씨와 만능재료시험기를 만나려고 재료연구소 본관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느 사업장처럼 요란한 기계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중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검사실에는 몇 대의 기계 장비가 진열돼 있고, 박종옥 씨는 만능재료시험기로 보이는 기계를 붙들고 의뢰받은 검사를 진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만능재료시험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상온·고온 인장시험과 압축시험·굽힘 시험·압확시험·편평시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요즘 주로 쓰이는 용처는 고온 인장시험이었는데, 1000℃ 이상의 열을 낼 수 있고 100t에 이르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계답게 요즘도 하루 2∼3건씩의 검사를 꼬박꼬박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극한 외부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소재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고온 인장시험을 의뢰하는 업체와 연구원들이 부쩍 늘었다. 이래저래 '큰형님'이 피곤해 보일 법도 여겨졌지만, 박 씨의 조작에 따라 빈틈없이 검사는 진행됐다.

박 씨는 "검사를 의뢰하려고 이곳을 찾는 외부 업체 직원들이 이 기계를 보고 놀란다"며 "실제 민간 업체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타는 기계는 이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에게 만능재료시험기는 정이 들 대로 든 친구 같은 기계지만, 이 기계 때문에 쉴 틈 없이 일할 때가 잦았다고 한다. 폭주하는 검사 의뢰 때문에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한 적도 있고 빡빡한 연구 프로젝트 일정에 맞추기 위한 시간 외 근무도 부지기수였다.

고온인장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이 거의 없는데다, 있다고 해도 재료연구소처럼 외부 업체 의뢰를 받아들이는 곳이 좀체 없어 창원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검사 의뢰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 25년 동안 잔고장 없이 묵묵하게 함께 근무한 만능재료시험기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박 씨가 만능재료시험기를 붙들고 한창 작업을 하는 동안 이 기계와 유사하게 생긴 장비 한 대를 검사실에서 발견했다. 30년 가까이 세월의 때를 탄 만능재료시험기와 달리 최근에 들여온 듯 윤기마저 도는 신형 기계였다.

이 기계 역시 만능재료시험기와 같은 용도로 쓰이는 장비인데,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인장시험 의뢰를 충당하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형기계는 아직 '큰형님'의 일을 완전히 가져오지 못했다. 온도를 1000℃까지 올려야 하는 고온 인장시험은 여전히 '큰형님'이 전담했고, 이 신형기계는 상온에서의 인장시험만 수행하고 있었다.

소재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그 위상을 높여가는 재료연구소의 연구결과물 상당수가 만능재료시험기의 도움을 받아 탄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아날로그 방식인데다 수동으로 하는 작업이어서 요즘 젊은 엔지니어들은 만능재료시험기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기도 한 모양이다.

박 씨는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한 점이 없을 뿐 아니라 디지털 기계와 비교해 더 정확했으면 정확했지 그 어떤 오차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대우정밀이 첫 직장이었던 박 씨는 40년 동안 산업 현장에서 근무했다. 그 중 절반이 넘는 25년 세월을 만능재료시험기와 함께한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길, 재료연구소 터 한편을 차지한 모형 에밀레종을 발견했다. 첨단 소재 연구 기관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에밀레 종이 신비한 울림을 지닌 소재 기술의 신기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재료연구소가 지향하는 바를 다소나마 읽을 수 있어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만능재료시험기와 박종옥 씨를 만난 후라 더욱 상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남도민일보 3/13일자